나는 관리사무소장이다 44

 

 

유 벽 희 주택관리사

일전에 위기십결을 가지고 관리사무소장의 업무에 연결을 지어보았다. 뿐만 아니라 바둑을 둘 때는 수많은 격언이 있다. 이 격언들을 보고 있으면 관리소장의 처신에 어울리는 내용도 많이 있어 나를 돌아보는 계기로 삼기도 한다. 그중 몇 가지를 소개해 보고자 한다. 바둑을 못 둬도 글의 이해에 큰 어려움은 없을 것이라 본다.
[1립2전, 2립3전]
바둑을 처음 배울 때 이음과 끊음에 대해서 배우게 되는데, 이어진 돌은 강하고 끊어진 돌은 약한 것이 일반적인 모양이다.
집을 지을 때는 먼저 기초를 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바둑에서 집을 지을 때도 먼저 기본 모양을 만들어야 하는데 촘촘하게 놓기 보다는 넓직하게 놓는 것이 큰집을 만들기 쉽다. 여기서 모든 세상살이와 비슷한 갈등이 생긴다.
큰집의 형태를 갖추려면 돌의 간격을 멀리 할수록 유리한 반면 멀리 놓을수록 끊어져서 약한 돌이 될 위험성이 상존하게 된다. 따라서 욕심을 내어서 너무 멀리 두었다가 끊어지는 것보다는 차라리 좀 좁더라도 촘촘하게 두는 것이 낫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렇게 두어서는 끊어지지 않을지는 모르겠으나 이기기도 힘들다.
그래서 바둑돌이 끊어지는 것을 방비하면서도 돌의 효율적인 벌리는 거리의 기준을 나타내준 말이다. 돌이 하나 있을 때(1립)는 두 칸(2전)을 벌리고 2개의 돌을 기초(2립)로 해 벌리고자 할  때는 세 칸(3전)을 벌리면 적당하다는 격언이다.
즉, 기초가 얼마나 튼튼한가에 따라서 벌리는 거리를 조절하라는 의미이다.
직원들에게 격려를 하거나 질책을 할 때 그것이 한 일에 대해 지나칠 때는 역효과가 날 것이다. 때때로 있을 수 있는 입주자대표회의나 입주민에 대한 수긍이나 반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리라. 그냥 농담처럼 사과 한마디로 가볍게 지나갈 수도 있는 일도 얼굴을 굳히고 정색을 하고 덤비다가 화를 자초한다거나, 반대로 좀 강하게 반발할 필요가 있는 대목에서 한없이 굽실대다가 한번 만만히 보인 것이 영원한 하수인이 된다거나, 끊어지지도 않고 너무 촘촘하지도 않게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판 전체를 끌어나가는 조절능력이 필요한 것이 관리소장의 자리라는 생각이 든다. 
[쌈지뜨면 지나니 대해로 나가라.]
바둑에서는 두 눈(두 집이라고도 한다.)이 나야 살 수 있다.
바꿔 말하면 바둑에서 말이 살기 위한 최소한의 구비 조건은 두 눈이라 하고 이렇게 두 눈을 겨우 내고 사는 경우를 “쌈지뜨고 살았다”라고 한다. 그런데 이렇게 쌈지를 뜨고 나면 진다고 한다. 고군분투해서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진다니 아니러니하다.
그것은 사는데 급급하다 보면 주변에 악영향을 미치게 되고 어렵사리 살았다 해도 판 전체로 보아 살리는 것이 포기하는 것 보다 못한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가 많은 까닭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는데 급급해서 옹색하게 행마하지 말고 넓은 곳으로 나가서 맞서 싸우는 것이 좋다는 의미이다. 관리사무소 일을 하다보면 곤란한 경우들이 많이 있다.
특히 입주민이나 동대표들의 무리한 청탁이나 적법하지 않은 요구들을 마주해야 하는 경우 등은 더욱 그렇다. 이럴 때 자리보존을 위해서 그런 요구를 아무 조건 없이 들어줬을 때 당장은 살아남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한 번의 불법은 두 번, 세 번의 불법을 불러오게 되고 그것은 후일 자신의 입지를 위협하는 요소로 작용하게 될뿐더러 자칫하면 평생 아예 관리소장 일을 못하는 경우를 초래하기도 할 것이라 본다. 그러므로 당장 살아남기 위해서 주변을 차단당하는 우를 범하지 말고 당당하게 넓은 중앙을 지향하는 운석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워낙 이직이 많은 직종이다 보니 한 곳에 오래 근무하는 것을 최고의 선으로 생각하고 관리소장의 가치기준을 지금 있는 곳에서 버티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고 얘기하는 경우들도 더러 있다. 물론 자주 옮기는 것이 바람직한 것은 아니겠지만 그렇다 해서 수단 방법에 관계없이 한 곳에서만 버티는 것이 능사라고 생각되지도 않는다.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사소취대와 사석작전이라는 것이 있다.
말 그대로 작은 것을 버리고 큰 것을 얻거나 몇 개의 돌을 죽여서 더 큰 대가를 얻어낼 때 쓰이는 말이다.
관리소장 역시 당장의 수명연장과 작은 이익에 연연하기보다, 때에 따라서는 과감하게 버리는 쪽을 택하는 것이 후일에 더 큰 대가를 얻는 길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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