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설

 

 

자본주의 무한경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넉넉지 않은 사람들에게 자격증은 그나마 ‘패배자’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을 막아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라고 여기는 경향이 늘고 있다. 그러다보니 주택관리사 자격증의 가치 역시 날로 상승하는 추세다.
주택관리사 자격시험 응시자는 매년 1만5,000여명, 합격자 역시 적게는 1,000여 명에서 많게는 3,000~4,000명씩 배출되고 있다. 게다가 제9회 시험이 실시된 2006년부터 격년에서 매년으로 바뀌어 합격자들이 두 배로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2014년까지 배출된 누적 합격자는 4만8,523명에 이른다.
그런데 이들 중 자격증을 실제 삶의 동력으로 활용하는 숫자는 지극히 미미하다. 대한주택관리사협회 현황을 보면 2014년 9월 현재 현장배치자는 1만4,696명에 불과하다. 10명 중 7명이 취업하지 못한 셈이다. 합격자 수를 줄이기 위해 아무리 어렵게 출제해도 대한민국 수험생 특유의 학구열과 뛰어난 강사진의 쪽집게 수업으로 인해 숫자 줄이기는 매번 실패를 거듭하고 있다.합격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느는데 반해 취업자는 산술급수적으로만 늘 뿐이어서 실업자가 쌓여만 간다.
그러나 과다배출이 유발하는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 바로 비리를 조장하는 원인이 된다는 점이다. 먹고 사는 문제가 절박한 이들에게 일자리를 놓고 벌이는 싸움은 이전투구가 될 수밖에 없다. 턱없이 낮은 급여에도 지원자가 쇄도하고 ‘소장 자리 하나에 얼마’라는 루머가 공공연하게 통용되고 있다.
이런 현실이 ‘합격은 다행, 취업은 천행’이라는 자조적인 푸념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는 주택관리사 개인뿐 아니라 전체 입주민에게까지 피해를 준다. 돈으로 거래한 자리에 앉아 박봉에 시달리며 일하는 사람에게 최선을 다해 일해 주길 기대하는 것은 우물에서 숭늉을 구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이렇게 심각한 상황을 인식한 국회 국토교통위원장 박기춘 의원이 지난 연말 ‘주택관리사보 자격시험에 2017년부터 선발예정인원제를 도입’하는 내용을 담은 ‘주택법 일부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온통 붉게 물든 레드오션이 조금씩이나마 맑아질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두 명의 의원이 반대해 소위조차 통과하지 못했다는 비보가 들려온다. 두 사람의 주장은 “국가적 대세인 ‘규제완화’의 취지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참으로 개탄할 억지가 아닐 수 없다. 그들은 벌써 무차별적인 규제완화가 어떤 참극을 초래했는지 잊었단 말인가.
일본에서 고철덩어리에 불과했던 낡은 배를 들여와 깡통처럼 개조했는데도 정부는 모두 허가해 줬다. 그게 300명이 넘는 무고한 사람을 수장시키는 참사를 가져왔다. 그것은 ‘살인허가’였다. 투자와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 대대적인 규제완화를 시행한 결과 경제활성화는커녕 대기업의 사내유보금 증가와 땅 보유 확대만 가져왔을 뿐이었다. 규제와 돈을 함께 풀었던 결과는 부동산과 주식 등에 대대적인 거품만 키웠다.
나쁜 규제는 당연히 없애야 하지만 모든 규제를 ‘암덩어리’로만 치부해 ‘쳐 없애버린다’면 대한민국 사회는 약육강식의 논리가 판치는 정글이 될 뿐이다. 그 어떤 규제철폐가 경제를 살렸거나 서민의 삶을 개선시켰는지 증명된 바도 없다.
주택관리사는 다른 자격증처럼 개인의 의지로 개업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의사, 변호사뿐 아니라 공인중개사나 전기기사도 마음만 먹으면 독립된 사업을 영위할 수 있지만 주택관리사가 아파트 단지를 건설(!)하지 않는 한 스스로 자리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법을 만드는 자라면 이런 이면까지 고려해야 한다.
개정안의 소위 통과를 무산시킨 두 의원에게 묻고 싶다. 천신만고 끝에 합격한 수험생이 취업이라는 거대한 장벽에 가로막혀 개업조차 할 수 없는 자격증을 원망하고 그간 들인 돈과 시간과 노력을 한탄하며 절망에 빠진다면 당신들은 어떤 해결책을 제시할 것인가.
경쟁을 없애자는 게 아니다. 모두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합리적 경쟁의 룰을 만들자는 것이다.
적당한 경쟁은 능률을 향상시켜 주지만 지독한 경쟁은 개인과 사회를 피폐하게 만들 뿐이다.

 

저작권자 © 한국아파트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