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관리사무소장이다 (40)

 

 


하나, 201X년도에 관리사무소에서 작성한 기안문건이 약 100건 정도 된다. 그런데 그중의 90%를 넘는 문서가 내가 근무를 시작한 하반기에  만들어졌다.
실무 담당자는 그야말로 ‘죽을 맛’이었을 것이다. 한 달에 한건의 기안문을 작성하거나 말거나 하다가 거의 매일 기안문을 작성하고 때로는 업무보고서도 만들라 하며 작성하는 것만도 힘들고 귀찮은데 그로 인해 이런저런 ‘잔소리’를 들어야 하니 입장을 바꿔서 보면 참 짜증스럽고 관리소장이 ‘죽일 놈’같아 보였을 것이라 생각한다.
사람은 아무리 영특해도 기억력에 한계가 있게 마련이고 시간이 흐른 뒤 현재의 상황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은 기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비용이 들어가는 부분은 거의 틀림없이 사진을 첨부해서 문서화하라고 지시한다.
처음에는 몇 글자 안 되는 짧은 문서하나 작성하는 것으로도 하루 종일 붙잡고 힘들어하고 어설프더니 시간이 지나면서 내용이나 표현 방법에 있어서 많은 발전을 했다.
만약 지시하는 부분을 따라오지 못했다면 내가 직접 작성을 해서라도 문서들을 남겼을 터이지만 다행히 담당자는 나름대로 많은 노력을 기울였었다.
관리소장으로 근무를 해보니 말로는 잘하는데 문서작성을 제대로 못하거나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다. 실무 담당자뿐만 아니라 관리소장 본인이 그런 경우도 의외로 많다.
간단한 공문 하나 작성하는 것도 크게 마음먹어야 하고 마지못해 만들어 놓은 것도 정독을 해서 봤음에도 무슨 말인지 도통 이해가 안가도록 난해하게 작성하는 경우도 있다. 관리소장으로 근무하려면 문서작성을 기피하고 두려워하는 사람은 반드시 훈련이 필요하다고 본다. 시설에 대해 능통하고, 회계를 잘 알고, 인간관계가 원만한 것만으로 관리소장의 업무가 전부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물론 실무에 대한 많은 지식과 경험이 가장 중요하겠지만 한 일을 기록으로 남기고 문서화해서 상대방을 이해시키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때때로 문서작성은 기록의 문제에 국한하는 것이 아니라 문서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관리소장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 다양한 해법을 제시해주기도 한다. 표현방법은 개인에 따라 다소 달라질 수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눈과 머리로만 이해하는 것으로는 발전하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처음엔 어색하고 서툴더라도 직접 작성하고 써봐야만 조금씩이라도 늘 수 있다. “나는 글재주가 없어서, 해본 적이 없어서…” 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짧은 글이라도 더욱 더 자주 써보고 직접 해보려는 노력이 따라야 할 것이라고 본다. 못하기 때문에 안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껏 안 해왔기 때문에 못 하는 것은 아닐까?
둘, “아파트 관리사무소 일이란 것이 대개는 비슷하므로 누가 관리소장을 하건 업무의 90% 정도는 대동소이하다.  그런데 나머지 10%가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고 분위기를 바꾸는 것이다. 누가 해도 해야 하고 어차피 해야 하는 평소의 업무가 90%라고 하면 나머지 10%는 뭘까? 나는 그 10%를 포장과 진정성이라고 생각한다. 죽어라고 일해 놓고 욕은 욕대로 먹는 사람이 있는 반면, 똑 같은 일을 하고도 칭찬을 듣는 사람이 있다. 같은 일을 하고도 욕을 먹는 이유는 상대방을 이해시키는데 실패한 경우이고, 칭찬을 듣는 이유는 상대방을 납득시켰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내용물이 같은 물건이라도 보기 좋게 포장된 물건은 소비자의 선택을 받기 쉬운 법이다. 일로 따지자면 마무리가 되겠고 문서로 따지자면 표현의 방법이라고도 할 수 있다. 거의 비슷해보여도 디테일한 작은 차이 하나가 명품과 짝퉁을 구별 짓는다. 그리고 그러한 디테일한 차이를 극복하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진정성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마지못해 습관적으로 일을 해서는 평생을 가도 그 차이는 메꿀 수 없는 것이다”
어제 관리과장이 들고 올라온 기안서를 보고 몇 줄 첨삭과 대비표를 넣을 것을 지시하면서 장황한 잔소리를 했다. 
물론 내가 관리과장보다 인간적으로 성숙해서 그런 잔소리를 하는 것도 아니고 직장이므로 상급자로서 느낀 바를 말한 것이기도 하거니와, 상대방이 나를 괴롭히기로 작정하거나 다른 이유로 하여 해코지할 목적에 의해 의도적으로 트집을 잡는 경우라면 백약이 무효일 터이다.
하지만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 일상적인 상황에서 “나는 열심히 일하는데 왜 욕을 먹고 있을까?”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본인의 표현에 문제는 없었는지, 내가 상대방을 잘 이해시키고 있는 것인지 그러한 노력을 해본 적은 있는지 한번 뒤돌아보는 것은 어떨까?

 

 

저작권자 © 한국아파트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