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여행

어디서 이 많은 새들이 왔을까.
어느 숲에서 새들은
이리 청아하게 울고 있을까.
유채꽃 만발한 들녘을
마을 돌담길에 들여다 놓고
봄은 벌써 저만치 간다.

 

 

아래층의 작은방에는 여남은 노인들이 둘러앉아 안부들을 나누고 있다. 팽목항에서 출발한 배가 조도 창유항을 들러서 라배도, 관사도를 지나 소마도를 떠날 즈음. “간다~ 못간다~ 얼마나 울어서~ 대동강수 강수에 대동강이 젖네~” 퉁퉁대는 배의 기계소리에 섞여 잔잔히 노래 소리가 들린다. 잠시 눈을 붙이려다 일어나 앉으니 관매도 관호마을에 산다는 배순단(83) 할머니의 구슬픈 앞 절 가락에 이어 “~아리 아리랑 쓰리 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진도아리랑이 흥겹게 들리며 손바닥 장단이 이어진다. 어느 명창도 흉내낼 수 없는 여든 한 평생 삶이 만들어 낸 가락이다.
여행은 여행지의 사람을 만나면서 시작되는 것일까. 절벽과 절벽을 인공적으로 이어놓은 ‘하늘다리’가 지금은 관매8경 중 하나이지만 절벽에 다리가 생기기 전에는 나뭇단을 지고 내려올 때 무서움을 이기려고 이런 노래들을 부르며 바위와 바위 사이를 내려왔다고 관매도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준다. 생활전반의 삶이 묻어나는 진도아리랑은 익살과 해학이 있고 남녀 간의 이별과 사랑에 대한 것이 많아 노랫말 수가 750여 개나 된다.

 

▲ 관매해변 솔 숲의 일몰

관매도는 해안과 기암의 자연경관이 아름다워 천혜의 절경으로 국립공원 내 명품마을 1호로 지정됐다. 돌담으로 이뤄진 나즈막한 마을이 들녘의 풍경들을 한껏 들여다 놓았다.
노란 유채꽃이 한창이다. 돌담으로 쌓은 학교는 폐교가 됐지만 아직 정갈한 마당은 수업이 끝난 오후처럼 한산하다. 길 건너 천연기념물 제212호로 지정된 후박나무 노거수 두 그루는 마을을 지키는 후덕한 장승처럼 서 있고 그 곁에 참느릅나무 두 그루와 곰솔이 함께 작은 숲을 이룬다. 이 숲은 성황림으로 집안의 평화와 행복을 기원하기 위해 매년 초 당제를 지내는 장소이기도 하다.
관매도는 해안의 대부분이 암석으로 이뤄져 있지만 북서쪽 해안은 사빈지형으로 2.2㎞의 모래해변이다. 관매해변은 수백년 된 곰솔 숲들에 둘러 있어 간간한 바람소리와 파도소리만 섬의 정적을 깬다. 솔 숲에서 보는 일몰이 아름다운 해안. 지금은 매화의 향기는 없지만 제주도로 귀향가던 선비 조씨가 백사장을 따라 매화가 무성하게 핀 것을 보고 관매도라 불렀다 하니 3백년 전 일이다. 지금 그 자리에는 송림(곰솔 숲 9만9,000㎡)이 바람을 막아 주는 방풍림의 역할을 한다. 누군가 바람이 지나는 이곳에 매화 대신 사시사철 바람을 막아 주는 소나무를 다시 심었으리라. 바다에서 보면 또 다른 작은 섬이 거대한 남근석을 머리에 이고 있는 방아섬과 관호마을 고개턱에 돌담으로 만들어진 우실을 지나면 화산암류로 이뤄진 절벽과 해식동굴 그리고 바람 가득한 파도를 만난다. 우실은 재냉기(재 너머에 부는 바람)로 농작물의 피해를 막는 돌담 역할도 하지만 온갖 재액과 역신을 차단하는 자아경계이며 마을의 경계, 우리 영역인 성과 속의 경계담으로써 민속신앙을 갖고 있다.

 

▲ 꽁돌이 있는 해안

파도소리가 좋은 바닷가의 넓은 암반에는 사람이 왼손으로 찍어 놓은 듯한 4~5m의 거대한 둥근 돌이 있고 그 앞에는 마치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듯 직경 1m 정도의 돌 묘가 있으니 하늘장사가 묻혔다는 돌묘와 꽁돌이다. 관매산에는 난초가 지천으로 꽃대를 피운다. 산길을 걷던 중 목이 말라 한웅큼 진달래꽃을 따서 두어 번 씹어 본다. 달콤한 즙들이 알싸한 향기로 입안에 퍼지며 갈증을 덜어준다. 그때 꽃잎을 따 먹으며 지나가던 어느 여인이 노래 부르듯 맑게 내뱉는 한 구절. “아~내 입 안에서 스러지는 수많은 꽃잎들의 영혼들!” 붉디 붉게 진달래가 피었다.
관매도로 출발하는 팽목항은 팽나무가 많이 있던 삼회면 팽목리 인근의 항구다. 동네 이름들에서도 생활 속에 함께했던 나무에 대한 조상들의 각별함을 볼 수 있다. 이제 팽목항에 희망의 숲을 다시 만든다고 한다. 울창한 숲이 되어 보길 바라본다. 1970년대에 ‘참나무 위의 노란 손수건’이라는 사랑의 이야기가 전 세계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 ‘Tie A Yellow Libon Round The Old Oak tree’라는 팝송으로도 불려졌다. 사랑과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는 메시지다. 팽목항의 노란 리본들. 노란 리본들을 두른 조그마한 배는 한없이 바다만 바라보고 있다.
“가장 낮은 곳에/ 젖은 낙엽보다 더 낮은 곳에/ 그래도라는 섬이 있다/ 그래도 살아가는 사람들/ 그래도 사랑의 불을 꺼뜨리지 않는 사람들” 김승희 시인의 ‘그래도라는 섬이 있다’는 시를 되뇌어 본다.
“세월아~ 세월아~ 오고 가지를 말아라. 아리 아리랑 쓰리 쓰리랑~” 뱃전에서의 노래가락이 그리운 섬. 봄은 오고 또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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