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관리사무소장이다(36)

 

유 벽 희 주택관리사

 

세상을 살면서 내 마음과 같은 사람이 얼마나 될까?
동대표로부터 터무니없는 요구를 받는다거나 입주민들로부터 난처한 민원이 제기될 때 혹은 직원들이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경우 때로는 불쾌할 수도 또는 곤혹스러울 수도 있다.
내가 아무리 옳다고 생각하고 바른길이라 믿고 갔어도 다른 시각으로 보면 잘못됐을 수도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자신이 잘못됐다는 것을 스스로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체면 때문에 억지를 부리면서 반전을 꾀하고자 하는 터무니없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은 것이 세상사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관리소장 중에는 사람이나 상황의 유형별로 대처방법을 숙지했다가 능수능란하게 대처함으로써 그 능력을 인정받는 이른바 처세의 달인들이 많을 뿐만 아니라 처신을 잘하려면 어떻게 하면 되는가에 대해 정말 많은 선배들이 경험한 바를 얘기하고 상황에 대해 정리를 해놓기도 했고 조언을 아끼지 않기도 한다. 위인들의 명언들을 예로 들기도 하고, 고전에 나타나는 가르침이나 훌륭한 이론과 논리를 접목하기도 하며, 동대표나 입주민 등 대인관계에 있어서의 처신이나 직원들을 대하는 자세와 요령을 설파하기도 하고 상황에 맞는 대처 방법들을 조목조목 예로 들어 조언을 해주는 친절한 선배들도 있다. 정말 고마운 일이다. 그런데 필자는 아둔해서인지 그 좋은 말씀들을 보거나 듣고도 조금만 지나면 머릿속에는 거의 남아있지를 않는다. 책을 보거나 영화를 볼 때 또는 음악을 들을 때도 그저 보고 듣는 것으로 그만인데 그와 관련한 많은 등장인물이나 지명 따위의 이름들을 기억해내어 대화나 글에 활용하는 분들의 뛰어난 기억력을 보면 정말 부럽기도 하고 한편으론 존경스럽다.
필자는 조금 전 봤던 영화의 주연배우 이름도 생각이 나지 않을 만큼 기억력이 별로 좋지 못한 때문에 선배들의 그 좋은 말씀들을 머릿속에 담아 놓을만한 용량도 부족하고 설령 기억해둔다 해도 그 상황이 벌어지면 그 말씀들을 떠올려 상황에 적절하게 적용할만한 순발력도 없는 탓에 관리소장을 하는 한 금과옥조에 비견될만한 좋은 말씀들이 분명해 보이는데도 무심코 지나칠 수밖에 없는 안타까움이 있다.
그래서 그 많은 가르침과 다양한 처세술을 다 알아둘 수 없다보니 궁여지책으로 대인관계에 있어서 관리소장의 처신과 문제해결의 지표로 생각해 낸 것은 딱 두 가지이다. 이 두 가지 처방약을 동대표이건 입주민이건 경리직원이건 미화 아주머니건 경비 아저씨이건, 기전기사나 관리과장이거나 구별 없이 적용하는 것은 우선 감퇴되고 한계가 있는 내 머리로도 감당할 만큼 어렵지 않게 외워둘 수 있고, 부작용도 있을 수 있긴 하겠으나 효과 또한 상당히 높은 편으로 말하자면 만병통치약과 유사한 효능을 지녔기 때문이다.
그 첫 째가 “역지사지”이다.
본인의 의사를 존중해주는데 그걸 싫어할 사람은 없고, 입장을 바꿔 생각했을 때 풀리지 않을 일도 그리 많지는 않다는 생각이라 쉽진 않지만 가급적 상대의 입장이 돼보려 애쓴다. 그래서 일단은 어떤 상황이든 먼저 진지한 자세로 상대의 의견을 들으려고 하고 그런 연후에 상대방의 주장이 상식과 합리성을 벗어나 있다 판단되더라도 즉각적인 반론을 해서 상대를 격앙시키기 보다는, 먼저 상대방의 주장 중에서 일리 있는 부분을 찾아내어 공감을 표해주고 그에 대비되는 합법적이거나 합리적이라고 생각되는 의견을 제시함으로써 가급적이면 상대방 스스로 퇴각할 길을 만들어주려 한다거나 잘 모르는 질문을 접할 때 서둘러 대답하기보다 검토할 시간을 얻어 잘 알아보고 나서 답을 찾아보려 애쓴다. 하지만 참을성 부족한 불같은 성격은 이조차도 머릿속 생각과는 다르게 불쑥 말이 먼저 나가서 주워 담을 수도 없고 참 난감한 노릇일 때가 많다.
그리고 두 번째가 “부전자전”이다. 대화를 하다보면 아직 인격 수양이 부족한 탓에 생각과는 달리 경솔하게 말해놓고 후회하는 때가 많이 있긴 하지만, 어찌됐건 그러한 경청과 대화를 통해서 무언가 처신을 결정해야 할 때는 내 딸과 아들을 떠올린다. 내가 하는 결정과 처신이 내 아이들이 사회생활을 하면서 그와 같은 경우를 당할 때 나를 닮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비록 이제껏 한 번도 물질적 풍요를 누리도록 하면서 키우지는 못했지만 먼 훗날이라도 그러한 상황에서 내가 했던 결정과 처신을 내 아이들에게 떳떳하게 말하고 싶은 사치만은 포기하고 싶지 않은 욕심이 남아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정작 정말 중요한 문제는 이 간단한 두 가지조차도 깜빡깜빡 해버릴 때가 많으니, 이래저래 사람을 상대하며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닌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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