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관리사무소장이다 35

 

 

유 벽 희 주택관리사

필자가 근무하는 아파트에는 전·현직 아파트 관리사무소장을 비롯해 주택관리사 자격 소지자가 여러 명 살고 있다. 필자가 살고 있는 아파트에도 아는 관리사무소장만 3명이 거주를 하고 있다. 이렇듯 요즘은 주택관리사 자격증을 가지고 다른 아파트에 근무하거나 근무했었던 또는 앞으로 근무를 희망하는 예비 관리사무소장들이 살고 있는 경우가 많다. 여기에 관리과장이나 기사, 경리, 경비, 미화원 등 관리사무소 종사자들이나 위탁관리사 관계자들 또는 전 현 입주자대표회의 구성원까지로 영역을 확대하면 아파트와 관련한 일에 대해 관계가 있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당연한 얘기지만 이 사람들은 아무래도 다른 입주민들에 비해 관리사무소의 업무에 대해서 상대적으로 잘 알고 있다. “다른 사람들보다 비교적 잘 알고 있다는 것” 이게 바로 함정이 될 때가 있다. 다른 사람에 비해서 잘 알고 있다는 것은 관리사무소의 어려움이나 애환들에 대해 이해의 폭이 넓고 어려움이 있을 때 도움을 줄 수 있는 여지가 그만큼 많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그런데 실제 나타나는 상황은 그와 반대되는 경우들이 많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자신이 알고 있는 그 짧은 지식이 세상의 전부인양 되지도 않는 소리로 따지고 들거나 질책을 하려 하는 사람이 이들인 경우가 의외로 많다는 것이다. 차라리 아예 모르는 사람은 몰라서 조용하고, 정말 잘 아는 사람은 모든 것을 이해하니 알고 넘어가는데, 어설프게 주워듣고 서툴게 알고 있는데 다가 성질까지 못돼먹은 사람이면 별 것도 아닌 것을 침소봉대하고 자신이 살고 있는 아파트의 관리사무소 직원들을 괴롭히곤 한다. 뿐만 아니라 용렬한 자신의 안목으론 생각하기 어려운 방법으로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는 걸 보거나 하면 어떻게 하든 그걸 무시하고 폄하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도 있다. 자신이 근무하는 곳에선 온갖 헛짓만 하면서 자신이 살고 있는 아파트에만 오면 갑자기 최고의 전문가가 되고 모든 것을 간섭하고 싶은 생각이 드는 희한한 사람들이 있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자기가 살고 있는 아파트 관리소장의 말은 들으려 하지 않으면서 이들이 하는 말은 여과 없이 신뢰하는 입주민들도 많다.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주택관리사가 입주민으로서 자신이 살고 있는 아파트의 관리 직원들을 도와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무엇일까?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가만히 있는 것이 도와주는 것”이라고 여긴다. 물론 입대의 구성원이 되거나 자생단체의 구성원이 돼서 관리사무소의 입장을 대변해주고 처우개선에 힘쓰는 등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선례도 많다. 하지만 좋은 의도라 해도 자칫하면 관리사무소 근무자들 자존심에 상처를 주게 될 우려가 있거나 이런저런 이유로 결국은 관리사무소에 도움을 주기보다는 악영향을 끼치게 될 개연성들이 높고 그럴 바엔 그냥 “수고하십니다”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는 것이 입주민으로서 관리사무소 직원들을 도와주는 가장 무난한 방법이 아닐까 싶다.
흔히 알고도 속고 모르고도 속는다고  한다. 모르고 속는 것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알면서도 속아 넘어가 주는 것은 그것을 짚고 넘어가봐야 크게 득 볼 것도 없고 굳이 얘길 안 해도 행위를 하는 당사자가 알만한 때에 눈감아 주는 것이라 본다. 잘못은 꼭 지적을 해서 시정을 해야만 능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대개 보면 잘못한 일에 대해서는 실수를 저지른 당사가가 가장 잘 아는 경우들이 많다. 따라서 크게 데미지가 없는 일이라면 굳이 상처를 들춰서 흉터를 남기기보다 본인 스스로 깨닫고 고칠 수 있도록 알고도 속아주는 미덕도 필요한 것이 세상사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물론 알면서 속아주는 걸 눈치 못 채고 제가 잘나 그런 것으로 착각하고 고질적인 잘못을 반복하는 “구제 불능성 얼간이”는 어쩔 수 없이 매를 들어야 하겠지만 말이다.
H소장이 자신이 근무하는 아파트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토로하면서 입대의 회장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호소한다. 핑계 없는 무덤이 없는 법이니 옳고 그름을 따지려면 당사자의 반론을 들어봐야 하겠지만 주택관리사 자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빌미로 거의 매일 관리사무소에 출근하다시피 하면서 사소한 업무까지도 통제를 하려 하고 직원들에게 직접 업무지시를 하며 무리하게 직원들의 부당해고를 요구하거나 특정업체와 수의계약을 종용하는 등 탈법을 요구한다는 몰상식한 행위를 전해 들으니 은근히 부아가 난다. 좁은 시야로 보면 관리사무소장으로 취업을 하고자 할 때 나의 대척점에 서있는 사람이 주택관리사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시야를 조금만 더 넓히고 보면 모두가 같은 길을 가고 있는 동지이다. 여자의 적은 여자란 말도 있지만 적어도 주택관리사의 적이 주택관리사가 돼서는 곤란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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