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게 친숙한 동물을 들자면 첫 손가락에 꼽힐 동물은 개일 것이다.
영화나 텔레비전에도 자주 등장하며 때론 주인공 역을 맡아 눈물샘을 자극할 정도로 뛰어난 연기력을 보여주기도 한다.
인터넷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사진들 역시 대부분 아기와 강아지 그리고 고양이의 귀여운 모습들이다.
관련 설화나 전설을 가지지 않은 국가와 사회가 거의 없을 정도로 개는 인류 역사에 가장 오랜 벗이 됐다.
한민족이 자랑하는 진돗개와 풍산개, 삽살개를 비롯해 품종에 따라선 수백만원, 수천만원을 오르내리기도 하고 중국 황실견으로 유명한 사자개 ‘장오’라는 녀석은 중국의 국견이자 국가 2호 보호동물로 선정될 만큼 사람 이상의 대우를 받으며 몸값만도 수십원억을 호가하고 있다. 이쯤되면 진정 ‘개팔자가 상팔자’인 셈이다.
예로부터 개들은 마당에서 자라며 동네는 물론이고 논밭과 들판을 마음껏 뛰놀았다.
비록 찌꺼기였지만 사람이 먹는 대부분의 음식을 함께 먹었다. 가끔 사람이나 닭을 물어 애물단지가 되기도 했지만 낯선 사람이 나타나면 온 동네 개가 합창하며 경계할 만큼 훌륭한 파수꾼 노릇도 했다.
한마디로 마을 전체가 ‘개판’이었던 셈이다.
우리 선조들은 ‘복날’이라는 복스러운 이름까지 붙여 ‘개의 날’을 제정했지만 개들에게는 반갑지 않은 날이었다. 그럼에도 몸이 허한 주인을 위해서는 기꺼이 자신의 몸을 내어주는 살신성인의 모습까지 보였다.
그런 인류의 친구들이 지금은 사방이 콘크리트로 막힌 아파트에서 실내생활을 한다. 들판의 흙내음을 기꺼이 포기한 채 외롭고 쓸쓸한 현대인의 친구가 돼 주려고 집안으로 들어왔다. 가끔 야성을 억누르지 못해 현관문 밖에서 들리는 낯선 인기척에 ‘버럭!’함으로써 층간소음의 원흉으로 몰리는 고초를 겪기도 하지만 개도 주인도 서로를 버릴 생각이 눈꼽만큼도 없을 만큼 완전한 혈육이 돼 버렸다. 개 이름 앞에 자신의 성을 붙여주는 주인들도 많다.
지난 10일 0시 40분쯤. 부산 사상구 한 아파트 4층에서 불이 났다. 안방에서 잠자던 김모(77) 할머니는 다급하게 짖는 애완견 ‘둥이’의 외침에 눈을 떴다. 발코니에서 타오르는 불길이 보였다. 거실은 이미 연기로 가득 찬 상태. 할머니는 작은방에서 자고 있던 아들을 급히 깨워 둥이와 함께 집을 빠져나왔다. 소방관들이 긴급출동해 20여분 만에 진화했지만 아파트 내부는 거의 다 타버렸다.
경찰은 “잠든 사이에 불이 나면 유독가스를 마셔 인명피해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애완견 덕에 김씨 모자가 빠져나올 수 있었다”고 한다.
만일 둥이가 주인을 깨우지 않았다면 위층 가구로까지 불이 번져 대형 화재참사가 빚어졌을 지도 모를 일이다. 개가 사람을 살렸다. 그것도 두 사람이 아닌 수십명, 수백명을.
요즘 우리 사회에 ‘진정성’이란 말이 유행하고 있다. 누군가 말을 꺼내면 내용을 논하기에 앞서 그 안에 든 속마음부터 의심하며 “진정성 있는 말을 하라”고 다그친다. 그만큼 사람이 사람을 믿지 못하는 세상이 된 것이다.
개와 함께 생활하는 사람들은 말한다. “개는 사람보다 진실하다”고. “개의 눈엔 거짓이 없다”고. 그래서 개와의 삶은 그냥 취미생활이 아닌 고독한 현대인의 마음을 달래주는 힐링이 된 듯하다.
‘개 눈에는 똥만 보인다’는 속담이 있다. 아니다. 개 눈에는 주인만 보인다. 그만큼 충직하다.
어쩌면 이웃들에게 천덕꾸러기 신세였을지도 모를 ‘둥이’에게 최고급 생선과 일등급 한우를 대접하고 싶다.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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