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용수의 에세이

 

을미년의 양떼가 봄을 몰고 와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플로팅 홀로그램인양 봄꽃이 고개를 내밀고 봄나물이 돋아나고 전국에는 강변과 꽃밭을 달리는 마라톤대회의 접수가 요란하다. 역사의 복판에서 왕도 두려워한다는 사관의 붓끝처럼 겨울나무에서 촉을 틔우는 녹색의 생명들이 하나처럼 찬란하다.
행복은 미래의 목표가 아니라 현재의 선택이라고 한 꾸뻬씨의 행복여행이 아니더라도 서둘러 봄맞이를 떠날 채비를 차려야겠다.
벌써 어느 산골의 양지쪽에선 짝을 찾느라 봄 곤충이 혈안이 되고, 천운으로 만난 암컷을 껴안고 놓치지 않으려는 사생결단의 수컷전쟁은 시작되었으리라. 누구의 지지율이 곤두박질을 치고, 갑의 횡포가 어떻고, 증세니 복지니 떠들어도, 생각만해도 설레는 아름다운 봄은 참으로 정직한 좋은 계절이 아닌가. 남도의 아파트 외벽은 특공대의 군화 발자국처럼 봄 햇살로 시끄럽다.
첫째가 사는 한일아파트도, 둘째가 사는 동아아파트도, 셋째가 사는 동성아파트도, 내가 사는 배진아파트도….
냉이와 달래를 비롯한 봄나물이 진수성찬을 위해 눈으로 향기로 바쁘게 달려온다. 봄나물은 국에 넣어 먹어도 좋고 고추장에 비벼 먹어도 좋다. 국에다 밥을 넣어 말아도, 밥에다 국을 넣어 말아도 국밥이다. 나물에다 밥을 넣어 비벼도, 밥에다 나물을 넣어 비벼도 비빔밥이다.
둘이 하나가 되는 것이 많지만 악수도 그 중의 하나가 아닐까. 오른손으로 하여도 왼손으로 하여도 악수요, 내가 너의 손을 잡아도 네가 나의 손을 잡아도 악수다. 악수란 반가운 인사요, 불편했던 화해요, 감사와 축하로 두 사람이 각자 동시에 손을 내밀어 마주잡음이 아닌가.
인간은 평생 동안 몇 번이나 악수를 하는지는 모르지만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세상이라는 아등바등의 행간에는 쓰나미도 있고 허리케인도 있다. 구곡간장 마디마디를 살다보면, 화해의 악수도 좋고, 반가운 악수도 좋고, 축하의 악수도 좋다.
어떤 모임이나 첫 만남은 악수가 앞장을 선다. 손을 잡는다는 것은 관계의 시작이며 마음을 나누는 출발이다. 싸움을 할 땐 하더라도 만남에 악수가 필수적인 선두인지라 여야의 만남도 악수요, 노사의 만남도 악수요, 너와 나의 만남도 악수로 시작한다.
악수는 빈손이다. 빈손은 욕심이 없는 청렴결백이요, 계산이 없는 청정사랑이며, 무상심심의 진공묘유다. 태어날 때도 빈손이며 죽을 때도 빈손인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직립의 인간만이 가지는 유일한 특권인 손은 빈손일 때 피아노의 건반을 두드리고, 빈손일 때 화가는 그림을 그리며, 빈손일 때 서예가는 일필휘지를 하며, 빈손일 때 시인은 글을 쓰고, 빈손일 때 우리들은 기도를 한다. 손이 비어 있지 않으면 건축이 되질 않고, 예술이 되질 않고, 경제가 되질 않고, 악수가 되질 않는다.
천국이나 극락으로 가는 현란한 언어나 화려한 말들의 사기꾼이 판을 치고 있지만 본심으로 돌아가 빈손이면 천국이요, 극락인 것을.
마음의 또 다른 이름이 손이다. 손을 펴지 않으면 절대로 악수가 되질 않는다.
박노해의 ‘손을 펴라’는 시다.

원숭이는 영리한 동물입니다. 아프리카 토인들이 이 영리한 원숭이를 생포할  때,
가죽으로 만든 자루에 원숭이가 제일 좋아하는 쌀을 넣어 나뭇가지에 단단히
매달아 놓습니다.
가죽 자루의 입구는 좁아서 원숭이의 손이 겨우 들어갈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얼마동안을 기다리면 원숭이가 찾아와 맛있는 쌀이 담긴 자루 속에 손을 집어넣습니다.
그리곤 쌀을 가득 움켜쥐고는 흐뭇해합니다.
그런데 쌀을 가득 움켜쥔 원숭이는 아무리 기를 써 봐도 그 자루 속에서 손을 빼낼 수가 없습니다. 놀란 원숭이는 몸부림치며 울부짖기 시작합니다.
손을 펴고 놓아버리기만 하면 쉽게 손을 빼내 저 푸른 숲속을 다시 자유롭게 누비며 살 수 있으련만, 슬프게도 원숭이는 한줌의 쌀을 움켜쥔 손을 펴지 못한 채 울부짖다가 결국 토인들에게 생포당하고 마는 것입니다.
손을 펴라.
놓아라, 놓아버려라.
움켜쥔 손을 펴라.
한 번 크게 놓아 버려라.

파계(破戒)도 계(戒)요 외도(外道)도 도(道)라고 우기며, 우리도 이 영리한 원숭이처럼 손을 펴는 걸 잊어버려 악수 한 번 하질 못하고 먼 데 까지 가면 어이할꼬.
☞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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