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관리사무소장이다 31

 

 

유 벽 희 주택관리사

노하우 하나. 입대하기 전 용접을 배우기 위해 어깨가 주저앉을 만큼 무거운 철판을 나르면서 잡일을 해본 적이 있다. 일이 끝나면 밤에 기술자들이 쉬고 있을 때 혼자 연습을 해보곤 했지만 낮에 눈치로 보고 밤에 혼자 연습하는 것만으론 생각만큼 잘 되지 않았다.
군복무를 마치고 열관리 자격증을 취득해 기관실에 취직했을 때도 조금 나은 기술을 익히기 위해서 선임자가 하는 것을 눈치로 보고 밤에 혼자 해보면서 익히곤 했다.
낮에는 눈치가 보여 밤에 천장을 기어 다니면서 도면과 실제 설치된 밸브의 위치나 배관이나 덕트의 배열상태를 익히기도 했다. 선임자가 조금만 가르쳐주면 쉽게 알 수 있고 알고 나면 별것도 아닌데 선임자는 자신이 알고 있는 기술을 가르쳐 주는데 아주 인색했다. 물론 필자가 앞서있던 선임자들에게 탐탁찮게 보여 그랬을 수도 있겠으나 그 당시 어느 계통이고 기술자들은 조금이라도 특이하다고 생각하면 자신의 기술을 타인에게 알려주는데 상당히 인색했었다고 기억한다.
그냥 가르쳐주고 일이 생기면 부려먹으면 될 것을 손도 못 대게하고 본인들이 직접 가서 처리하곤 했었으니 그걸 후배 직원을 아낀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책임감이 있고 부지런하다고 이해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아무튼 알고 보면 대수롭지도 않은 그런 기술이전에 인색했던 이면에는 자신의 기술에 대한 자부심도 있을 수 있었겠지만 자신의 밥줄에 대한 위기의식도 한 몫 하지 않았을까 생각 들기도 한다. 흔히 특정한 분야에서 자신만이 알고 있는 독특한 방법을 노하우라 하고 경쟁자보다 우위에 서기 위한 자신만의 특별한 방법이라 여기고 공개하는 것을 꺼리는 경우를 많이 봐왔다.
언젠가 술자리에서 “언제 잘릴지 모르는 관리소장의 세계에서 모든 주택관리사는 취업경쟁자다. 그러므로 관리에 대한 자신만의 특별한 노하우나 처세기법이 있어야 하고 그런 것들이 타인에게 공개되는 것은 적에게 실탄을 제공하는 것과 같다”라고 힘줘 설파하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한편으론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선뜻 동의하기는 어려웠다. 다소간의 경과기간이나 시행착오는 겪을 수 있을지 모르나 요즘 같은 정보화시대에서 몇 시간만 앉아서 뒤적거려보면 어렵지 않게 찾아낼 지식 몇 개 더 알고,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서 노력하면 누구나 다 흉내 낼 수 있는 하찮은 손재주들이나, 힘이 있다고 판단되는 소수의 사람들과 어울려 술이나 마셔주고 입에 발린 말 몇 마디 더해주면서 관리소장직을 연명하는 것이 ‘현실적’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해 심각하게 들려주던 그 얘기들이 관리소장의 노하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좋은 관리소장이 되기 위해서는 인간관계에 대한 다양한 처세술과 기법들도 중요하고 다방면의 지식과 관리기술이나 기법들의 습득도 물론 필요할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관리소장으로서 부끄럽지 않게 처신하고 성실히 관리하는 진정성이야 말로 모든 기법에 우선해야할 노하우가 아닐까 생각한다.
노하우 둘. A소장 : 소장님 아깝지 않으세요? / 유소장 : 네? 뭐가요?
A소장 : 열심히 만든 자료를 그냥 공개하면 아깝지 않아요? / 유소장 : 그럼 그걸 돈 받고 파나요? / A소장 : 그런 뜻이 아니라 공개하고 나면 소장님의 노하우를 다른 사람이 그냥 쓰는 거니까, 그 뭐랄까 소장님의 특징이 없어지잖아요./
유소장 : 아, 그런가요? 하지만 제가 앞으로 길게 잡아 20년을 관리소장을 한다 치고 일 년에 한 번씩 자리를 옮겨 다닌다 해 제가 만든 걸 사용할 수 있는 아파트는 스무 곳 밖에 안 되잖아요. 하지만 공개하면 그보다는 훨씬 많은 곳에서 사용되니 제가 만든 보람은 더 커지겠지요./ A 소장 : 그래도 재취업한다거나 할 때 주변의 관리소장은 다 경쟁자나 마찬가지인 소장님만의 장점을 살리기 힘드니까 경쟁력이 떨어지는 거잖아요./
유소장 : 동시에 몇 군데서 일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제가 어디에 지원했을 때 더 적당한 분이 계시면 그 분이 채용되는 건 당연한 것이니 별로 신경 쓰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런 걸 따져본 적은 없지만 만약 그렇다 하더라도 반대로 제가 어려우면 도와주려고 하는 분도 많아지지 않을까요?
관리사무소장의 노하우라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혼자 알고 있으면 한 곳에 밖에 쓰이지 못하지만 나누면 여러 곳에 쓰일 수 있고, 그것은 종국에 가서는 나의 경쟁력을 해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알지 못하는 곳, 보이지 않는 곳에 친구들을 더욱 많이 만드는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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