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설
을미년 양의 해가 밝아온다.
2015년이 된 지 벌써 두 달째를 맞이하고 있는데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고 하겠지만 60간지를 사용해 해마다 동물의 띠를 부여하는 것은 동양에서도 주로 한자문화권에만 한정돼 있는 일이니 서양력의 1월 1일은 진정한 을미년의 첫 날이라 보기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설날(음력 1월 1일)인 오는 19일이 진짜 을미년의 새해 첫 날이라고 해도 이상할 게 없다. 그렇다보니 양력 1월 1일부터 설날 사이에 태어난 사람들은 자신이 무슨 띠인지 헷갈려 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60간지의 의미를 제대로 부여하기 위해 음력으로 따지면 아직은 전 해의 띠를 적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올해 설 연휴는 5일간 이어지니 비교적 넉넉하고 여유로운 휴가를 보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그런 고즈넉한 연휴를 즐기지 못하는, 즐길 수 없는 사람들도 꽤 많다. 비행기, 기차, 버스기사처럼 수송업 종사자는 물론이고 경찰이나 소방관처럼 긴 휴일에 더 바짝 긴장상태를 유지해야 하는 고맙고 미안한 사람들도 있다.
게다가 각종 사건 사고로 인해 즐겁고 행복해야 할 명절이 오히려 더 큰 괴로움으로 다가오는 이웃도 있다. 대표적으로 세월호 참사 유가족이 있고, 오룡호 사고와 판교 환풍구 사고 등 나라 구석구석에서 끊이지 않고 벌어진 각종 재난사고의 유가족들은 비명횡사한 가족의 빈자리로 인해 크나큰 슬픔과 고통 속에 긴 연휴를 보내게 될 것이다.
지난 5일 아직은 컴컴한 새벽. 광주 남구 봉선동 대화아파트 인근 옹벽이 붕괴되면서 엄청난 양의 토사가 쏟아져 내려 차량 수십대를 덮쳤다.
높이 20m, 길이 188m의 옹벽 규모 중 50m 가량이 붕괴돼 입주민 수백 명이 자다 말고 긴급 대피해야 했다. 한 토목전문가는 “높이가 8m를 넘는 옹벽은 2, 3단으로 쌓아야 하는데 붕괴된 옹벽은 1단이었다”며 “부득이하게 1단으로 할 경우 기둥을 세우는 등 다른 특수공법을 써야 했다”고 말한다.
“22년간 무너지지 않은 게 신기할 뿐”이라는 등골이 오싹한 말도 남겼다.
광주 남구는 2013년과 2014년 해당 옹벽의 안전점검을 실시한 결과 모두 ‘이상 없음’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남구 관계자는 “붕괴된 옹벽이 B급 시설물이라 주의 관찰대상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경찰은 부실시공이 최종 확인될 경우 수사에 나설 계획이라고는 하나, 해당 건설사는 부도났고 공소시효도 지났다니 별 소득 없이 종결될 확률이 높다.
이번 겨울에는 엄동설한이라 부를만한 추위가 별로 없었다. 기상대 예보에 의하면 남은 겨울 동안에도 큰 추위는 없을 것이라 한다. 지금부터 해빙기 안전점검을 강화해야 한다. 광주 대화아파트처럼 주변에 옹벽이나 축대, 경사면이 있다면 막연히 육안검사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전문가의 진단을 받아 위험여부를 면밀히 체크해야 한다. 옹벽 붕괴 사고조사에 착수한 안전진단팀은 옹벽 내부 철근이 표준안에 비해 30% 정도만 시공됐고 이마저 허술하게 연결된 것을 발견했다며 총체적 부실공사임을 확인했다. 겉모습만으론 이같은 사실을 알 수 없는 것이다. 균열이나 지반침하에 의한 건축물의 기울기 역시 중요 점검사항에 속한다.
명절 연휴기간에는 이외에도 각종 사고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음식물 조리 시 가스폭발과 화재가 일어날 수 있으며 빈 집에서는 전기누전 등에 의한 화재가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 빈집털이 차량털이 역시 기승을 벌일 시기다. 우울증과 신병비관에 의한 자살 또한 명절에 자주 일어나는 사건사고의 양상들이다.
대화아파트 옹벽 붕괴 당시 입주민들은 집이 아닌 대피소에서 설을 맞이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있었지만, 당국에서는 추가 붕괴 가능성이 없는 것으로 보고 복구작업에 들어가 설 이전까지 응급복구를 완료하기로 했다고 한다. 덕분에 입주자대표들이나 관리사무소 직원들 역시 설 명절을 제대로 보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모두에게 그나마 불행 중 다행스런 일이다.
즐거운 설 휴가를 떠나기 전 주변을 다시 한 번 돌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