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관리사무소장 이다 (30)

 

 


 
 
주택법에는 장기수선계획 및 장기수선충당금과 관련해 여러 조항이 들어있다. 장기수선계획과 장기수선충당금은 그 내용으로 봐 시설물을 좀 더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적절한 시기에 해당 시설물을 보수해서 상태와 기능을 정상상태로 유지해 장수명화를 꾀하며 무엇보다 일시에 과도한 수선비용이 발생해 입주자들이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자금 확보를 위해 평소에 조금씩 적립해두는 것에 그 의의가 있다 할 것이다.
하지만 직접 장기수선계획을 수립하거나 조정해본 관리소장이라면 대부분 한번쯤은 곤혹스러움을 느꼈을 것이라 생각한다. 적산과 건설의 전문가인 건설업체가 만들어서 사용검사권자에게 제출해 아파트에서 인수한 장기수선계획조차 제대로 만들어지지 못한 경우가 수두룩한데, 전문적으로 적산업무를 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한두 가지도 아닌 그 수많은 항목의 내역을 산출하는 것이 쉽지 않고 각 제품의 회사나 제품명을 알아내는 것부터 단가를 적용하는 것 또한 만만한 일이 아닐 것이라 본다. 대한주택관리사협회에서 홈페이지를 통해 제공하고 있는 장기수선계획의 수립, 조정 시스템이 있다고는 하지만 그 역시 기본적으로 물량과 제품에 대한 정보를 잘 알고 있어야 하며 설령 알고 있다 해도 단가가 꾸준히 업데이트 되지 못하고 있으며 만약 업데이트 된다 하더라도 표준품셈과 표준단가를 적용했을 것이라고 짐작되긴 하지만 그 방대한 종류의 제품과 공사를 다 반영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고 현실적인 가격에 따른 계획을 세우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이와 관련한 전문교육과 충분한 실무경험이 없는 상태라 그런지 몰라도 필자는 예전에 다중이용시설에서 수년간 시설파트 업무를 담당한 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도저히 제대로 된 조정안을 만들 자신이 없다. 마지못해 형식적으로 겨우 흉내만 냈을 뿐 계획을 조정하는 것부터 벽에 부딪히는 느낌이 들었다. 또한 온갖 노력 끝에 조정안을 만들었다고 가정을 한다 해도 이것을 계획대로 실행하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수선주기에 맞춰 조정했다 해도 실제는 수선주기와 다르게 보수를 요하는 경우들이 많이 있다. 예를 들어 대부분의 아파트에서 가장 많이 하게 되는 승강기 도르레와 로프의 교체 그리고 도장공사의 경우 시행규칙 별표 5에 따른 기준이 되는 수선주기는 5년이지만 실제는 유지관리업체의 조언을 듣거나 승강기 안전관리원에서 정기검사를 받고 권고하는 때에 교체를 하게 되는데 이런 경우 기준 수선주기를 넘는 경우들이 많이 있고 도장공사의 경우에도 상태에 따라 5년을 훨씬 초과해서 공사를 진행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다시 말해 장기수선계획은 주택법시행규칙의 기준에 따라 5년으로 세워놓았지만 실제 그 실행을 하는 것은 시설물의 상태에 따라 진행하게 되므로 그보다 늦은 6~8년 정도에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런데 주택법에 따른 벌칙 내용을 보면 수립되거나 조정된 장기수선계획에 따라 주요시설물을 교체하거나 보수하지 않은 입주자대표자에게는 1,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한다고 돼 있다. 승강기 전문가가 봐도 아직 쓸만해서 바꾸지 않아도 된다고 하고 아파트가 깨끗해서 비용을 절약하기 위해 몇 년 뒤에 도장을 하려고 해도 과태료를 물지 않으려면 계획대로 5년마다 교체하고 칠하라는 얘기인데, 이게 과연 입주민들을 위해 옳은 일인지 잘 모르겠다. 물론 입법자의 입장에서는 그렇기 때문에 3년마다 검토를 하고 조정을 하라고 핑계를 댄다거나 3년이 되지 않았다 해도 입주자 과반수의 서면동의가 있으면 조정을 할 수 있는 조항이 있다고 강변할지는 모르겠다. 물론 3년마다 검토하고 조정하면 조금 나을지는 모르겠으나 그렇다 해도 정밀하게 현실을 반영하기는 매우 어려운 노릇이고 사안마다 입주자의 과반수 서면동의를 받는 일이 손바닥 뒤집듯이 그렇게 쉬운 일도 아니라고 여겨진다.
중요한 것은 장래에 있을 수선 자금을 미리 적립한다는 것과 자본적 지출은 장기수선충당금을 사용해서 세입자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하는 것 그리고 그 집행이 투명하게 이뤄지는 것이라고 본다. 그렇다면 터무니없이 수십 년분의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 하더라도 특별수선충당금의 적립요율처럼 건축비의 일정비율로 적립토록 하고 사용할 수 있는 공사의 종류를 특정해 다른 용도로 쓰이지 않게 하되 사용 시기에 있어서는 계획에 따르도록 강제하기보다 아파트의 상황에 따라 사용하도록 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 생각한다. 계획이 잘못되거나 누락된 경우 3년을 기다려서 조정해야 한다거나 입주자 과반수의 서면동의를 받으라고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바람직한 해결방법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현실성도 없고 지키기도 어려운 장기수선계획과 관련한 갖가지 규정과 제약은 폐지해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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