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기자가 쓰는 한 관리소장의 대 언론 투쟁기

 

 
일명 ‘김부선 사건’이라 불리는 난방비 사건이 처음 보도된 건 2014년 9월 14일이었다. 당시 김씨는 이틀 전인 12일, 반상회에서 이웃주민을 폭행했다는 혐의로 경찰조사를 앞두고 있었다. 이때만 해도 이 사건이 전국을 들끓게 만든 난방전쟁으로 확산될 것이라고 예측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대한주택관리사협회도 처음엔 이 사건에 크게 주목하지 않았다. 14일만 하더라도 난방비를 언급한 언론은 소수에 불과했고 대부분 김씨의 상흔과 폭행이 오가던 CCTV 영상을 보도하며 폭행에 주목했다.
하지만 김씨가 SNS에 올린 난방비 내역서와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난방비를 도둑질하고 있다’는 주장이 사건의 향방을 뒤바꿔 놨다. 김씨는 동대표, 선관위원장 등이 난방 비리의 원흉이며 관리사무소장이 이를 방조(또는 동조)했다는 식의 주장을 펼쳤다. 일부 언론은 이를 사회 고위층인(?) 입대의와 관리소장의 비리로 몰아갔고 그 방식은 주효했다.     
언론의 일방적인 보도를 등에 업고 김씨는 관리소장을 몰아붙였다. 그는 이전부터 관리사무소에 찾아와 관리소장의 얼굴에 침을 뱉고 욕설을 일삼았으며 관리직원의 손가락에 상처를 입히는 등 소란을 피워왔었다.
9월 중순부터는 수십 개의 방송과 신문이 매일같이 관리사무소를 찾아와 자신들이 원하는 답을 내놓으라고 위협했다. 적산열량계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기자들이 ‘난방비 0원’ 이라는 문구만 복사해대며 기사를 양산했다.
기자들은 관공서나 수사기관에서 찾아야할 자료를 관리사무소에 요구했고 중앙난방과 지역난방의 차이도 알지 못해 일일이 설명을 해줘야 했다. 어린아이를 가르치듯 관련법령을 차근차근 설명해 봤지만 돌아온 내용은 <의혹덩어리 관리소장 경찰수사 받아야>, <성실하게 난방비를 납부한 입주민만 피눈물> 등의 비방성 기사뿐이었다.
언론은 교묘하게 책임을 피해가며 새로울 것 하나 없는 조회 수 늘리기 성 기사만 쏟아냈다. 여론을 어지럽히고 입주민을 분열시키는 언론들에 관리소장은 지쳤고 위탁관리회사가 변경될 즈음 관리소장 직을 내려놓기로 결심했다.
관리회사는 A관리소장에게 소장 직을 계속 맡아 줄 것을 요청했지만 그는 정중히 사양했다. 혼탁한 현장을 떠나고 싶을 따름이었다. 
그가 관리소장 직을 내려놓자 일부 언론은 소장이 관리 비리에 책임을 지고 아파트를 떠났다는 소설까지 만들어내며 그를 공격했다.
이쯤 되자 관리소장은 사실상 난방비 비리의 주범이 돼버렸다. 동대표와 공모해 난방비를 다른 입주민에게 전가한 도둑, 관리소장은 범죄자가 된 자신의 처지가 서글펐다.
헛웃음이 나왔다. 이 업계에 들어온 지 벌써 몇 해가 지났나. 돈을 벌고자 했다면 다른 일을 했을 것이다. 10년이 넘는 시간동안 주택관리사라는 직업에 만족했고 나름대로 사명감을 가지고 직무에 매진했다. 큰 명예를 바란 건 아니었지만 도둑이라니. 가슴이 먹먹해졌다.
A관리소장은 마지막으로 협회의 문을 두드렸다.
9월 중순의 끝자락에서 협회는 난방비 사건이 점점 관리업무에 대한 비리로 비화되자 보도자료를 내고 침소봉대 식 보도 방향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했다. 진위가 확인되지 않은 사안으로 전국의 관리사무소를 비리의 온상으로 취급하고 있는 언론의 행태를 지적하며 균형적 시각을 요구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경고에도 언론의 태도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 와중에 서울 도봉구 창동의 아파트가 옥수동 아파트와 함께 난방비 비리가 의심되는 아파트로 방송을 타면서 사안은 점입가경으로 치닫는다.
한 입주민이 자신의 아파트도 의심스럽다며 방송에 제보를 한 것이다.
모 방송사 기자는 연락도 없이 아파트를 찾아와 B관리소장에게 카메라를 들이대고는 “김부선 아파트를 아느냐”며 “이 아파트도 난방비 비리가 있다고 해서 왔다”라고 마치 취조 같은 취재를 시작했다.
관리소장은 우리 아파트는 중앙난방이 아닌 지역난방이며 유량계를 사용하기 때문에 배터리를 뺄 수 있는 열량계 방식과 다르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기자는 설명을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였고 자신이 원하는 답이 나오지 않자 해당 입주민을 만나 인터뷰를 하고 자리를 떴다. 그리고 뉴스를 통해 옥수동 아파트와 유사한 아파트라는 내용을 리포트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방송에 의혹을 제기했던 그 입주민은 ‘난방 비리로 방송에 나온 아파트가 우리 아파트’라는 내용의 게시물을 단지 전체에 붙이고 다녔고 아파트는 일대 혼란에 휩싸였다. 일부 입주민은 ‘관리소장을 해임하고 경찰에 난방비 0원인 입주민을 고소하자’고 선동하기도 했다. 
한순간에 범죄자로 몰린 B관리소장 역시 눈앞이 캄캄해졌다. 하지만 그는 재빨리 ‘우리 아파트에 난방 비리는 없으며 해당 보도는 사실이 아니고 아파트 이미지 추락과 허위사실 적시에 대한 책임을 묻는 소송을 진행하겠다’는 내용의 ‘입주민에게 드리는 호소문’을 작성했다.
무엇보다 다행인 것은 이 아파트에는 옥수동 아파트의 김씨 같은 입주민이 없었다는 점이었다.
호소문으로 전말을 이해하게 된 대다수의 입주민들은 관리소장에 대한 항의를 거둬들였고 전과 다름없는 신뢰를 보였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에 새겨진 의심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 법. 관리소장은 승자 없는 싸움에서 지지 않았을 뿐, 이미 깊은 상처를 입은 상태였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인 10월 2일 대주관은 난방비 관련 고충처리위원회 회의를 개최한다.  
A관리소장은 입주민 김씨로부터 당한 모욕과 폭행사실을 진술했고 적산열량계 고장에 따른 조치내역 등 그간의 경과를 알렸다. 또 언론으로부터 무자비하게 찍힌 범죄자의 낙인을 지우고 싶다는 의사를 보였다. 하지만 고소에는 회의적이었다.
“김씨가 소장님께 폭언과 폭행을 하지 않았습니까, 게다가 침을 뱉고요. 왜 고소를 망설이십니까?” 위원의 물음에 소장은 천천히 입을 뗐다.
“그래도 그분은 저희 아파트의 입주민이지 않습니까. 관리소장이 어떻게 입주민을 고소할 수 있겠습니까” 그는 말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좀 다릅니다. 이대로 있다가는 관리사무소 전체가 비리를 저지르는 곳으로 의심받게 생겼습니다”
“제가 근무하는 단지도 수도나 전기료를 들먹이며 관리사무소를 의심하는 입주민이 생겨났습니다”
“고소합시다. 고소”
고충위의 입장은 관리소장에 대한 폭언과 폭행, 그리고 주택관리사 전체의 명예훼손에 대한 법률적 대응을 함께 진행하자는 의견이 많았다. 
관리소장은 말했다 “저 개인에 대한 명예훼손 건보다 주택관리사 전체의 명예회복을 위해 난방비 관련 내용에 중점을 뒀으면 좋겠습니다”
한국주택관리연구원 소속 한영화 변호사(고충처리위원)는 일단은 관리소장 본인 의사가 가장 중요하다는 뜻을 전했고 고충위는 장시간의 회의 끝에 법적대응은 마지막 보루로 남겨두고 반론 보도요청을 위한 언론 소위원회를 구성하기로 결의했다.
언론소위는 관리소장의 명예를 훼손한 기사를 찾아 대응하기로 하고 최응균 소위원장을 필두로 조사에 착수했다. 위원들은 모두 필사적이었지만 그 당시 언론에서 A관리소장은 여전히 난방 비리를 저지르고 달아난 도망자 신세였다. 수차례의 싸움 끝에 사과를 받아내기까지 아직 너무나도 많은 시간이 남아 있었다.

참고자료
대한주택관리사협회 고충처리위원회 규정
제5조(고충민원의 신청)
① 회원은 누구든지 업무 중 발생한 고충사안에 대하여 위원회에 그 처리 및 협조를 민원으로 신청할 수 있다.
② 고충민원을 신청하고자 하는 회원은 성명·주소·전화번호(핸드폰번호) 및 민원내용을 기재하여 우편·인터넷·팩스로 위원회에 신청할 수 있으며 직접 위원을 방문하여 신청할 수 있다.

<2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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