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가 있는 여행 떠나go!

이 성 영 여행객원기자
laddersy@hanmail.net
 
 
 
섬진강은 남원, 곡성, 구례를 지나  지리산 자락 불일폭포 깊은 골의 물까지 끌어들여 하동의 악양 뜰을 적시며 광양만으로 빠진다. 연이어진 산과 깊은 골짜기에는 바람과 함께 벌거벗은 나무들이 수많은 가지들을 바람에 내어 놓은 채 서 있다. 그러다 갑자기 봄을 맞으면 마을 골마다 주체하지 못할 매화꽃 만발할 남도. 아직은 기다리는 봄이다. 가슴시린 그리움 같은 푸른 바다와 만나는 날,
 강물은 봄이 되어 흐른다.

 
 

바람의 풍경소리에 머문 바위들
 
▲금산의 팔선대(바다로 향하는 암릉들)/두모마을과 김만중의 우배지 노도

하동에서 남해로 들어가는 관문. 노량해협 거센 물살을 가로지르는 남해대교를 지나면 느리면 느릴수록 행복해진다는 남해 바래길이 시작된다. “이야기가 있는 문화생태탐방로”는 해안의 자연환경을 가슴에 담으며 즐겁게 걷는 8개 코스로 총 120㎞의 문화 체육관광부가 선정한 남해의 도보 여행길이다.
산과 바다로 이어진 도보 여행길은 구운몽길, 섬노래길, 화전별곡길, 말발굽길, 고사리밭길, 진지리길 등 이름만 들어도 남해의 문화와 이야기를 짐짓 이해할만하다.
제1코스인 다랭이지겟길의 종착지면서 앵강만으로 이어지는 2코스 앵강다숲길의 시작점에는 전형적인 오지 산간 마을이 있다. 섬에서 깊은 산중에나 있을 산간 마을이라니.
응봉산(472m) 암릉과 설흘산(481m)이 만나는 경사진 터에 자리 잡은 가천 마을은 높은 산이 병풍처럼 둘러 있고 경사진 마을길은 철썩이는 파도 소리 가득한 바다 암릉으로 이어진다.
산비탈을 개간하여 층층이 만들어진 논은 아버지의 아버지들이 높은 석축을 쌓으며 척박하고 고된 삶을 보여주듯 논두렁의 구불구불한 선들은 주름진 얼굴처럼 하얗게 바다 빛을 닮아 간다. 국가 지정 명승 15호인 다랑이 논이다. 바닷길은 산자락에서 시작되고 산길은 바다에서부터 열리니 산과 바다는 한 몸처럼 길을 만든다.

▲금산의 보리암    

그 길 위에 한려해상국립공원 지역인 금산(701m)의 보리암 가는 길이 열려있다. 보리암은 한 가지 소원은 반드시 들어주는 영험하고 자비스런 기도 도량으로 소문난 사찰이다. 바다를 등지고 올라가는 사람들은 가슴에 염원 하나쯤은 간직하고 이 산을 올랐을 터. 갖가지 사연들을 짊어지고 산을 오르며 자연 석문이 두개의 입구로 갈라선 쌍홍문에서 근심을 잊고 보리암에 이르러 그 사연들을 바다에 내려놓는다.
산을 오르는 것만으로도 누군가 가르치지 않는 삶의 매듭을 푸는 수행의 방법이었을까. 금산은 신라시대 원효대사가 그곳에 초당을 짓고 수도하면서 관세음보살을 친견한 뒤 산 이름을 보광산이라 붙이고 초암의 이름을 보광사라 하였다.

▲가천 마을의 다랑이 논    

조선시대에 이르러 태조 이성계가 이곳에서 백일기도를 하고 조선왕조를 연 것에 감사하는 뜻에서 산 전체를 비단으로 덮어 주겠다는 약속을 하였고 이름에 ‘비단 금(錦)’자를 쓰게 됐다. 금산의 보리암은 동해의 낙산사 홍련암, 서해의 강화 보문사와 함께 신라시대에 지은 사찰들로 3대 관음성지이다.
금산에 오르면 원효가 좌선하고 수행한 좌선대를 비롯하여 금산 38경의 바위들이 우뚝 서 있다. 누군가 무엇을 보았는가? 물어 본다면 “바람이 스쳐가는 보리암의 풍경소리에 잠시 주춤하던 바위들을 보았어. 자기가 만들어낸 껍질들을 벗어 던지고 또 다른 바위들을 낳으며 바다로 달려가는 것도 보았어” 얘기할 것이다.
팔선대에 오르면 산자락 끝에 구운몽의 저자 서포 김만중이 유배돼 생을 마친 노도가 뒷편으로 손에 잡힐 듯하다. 남해는 다도해의 중심에 있으니 하동을 거쳐 남해대교를 지나거나 삼천포대교를 거쳐 창선의 봄 푸른 바다 그 길에 서 있는 생각만으로도 가슴 설렌다.              
 
 
▲ 남해의 상사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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