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약 없이 빠져 든 2년 6개월 깊은 잠

[기획]관리현장이 위험하다 이경석l승인2014.04.16 16:57:00l87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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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주택 관리현장에는 늘 크고 작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육체적인 노동과 관련된 각종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으며 업무 스트레스로 인해 질병에 노출되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는 중압감을 견디지 못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안타까운 일도 벌어지고 있다.
이에 본지는 관리현장에서 발생하고 있는 다양한 사고사례와 그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 공동주택 종사자 및 그 주변의 동료, 가족 등을 조명해 보고자 한다.
이번 기획시리즈가 관리현장의 열악한 환경을 개선하고 종사자들이 안전한 근무여건을 확보하며, 스스로 업무 스트레스를 극복해 나가는 계기를 마련하는데 일조할 수 있길 바란다.                                    【특별취재=이경석 편집부장】

 

어느날 갑자기 뇌출혈로 쓰러져 식물인간이 됐다
병든 노모의 병원비는 그의 휴업급여로 내고 있다
어머니를 위해서라도 그는 살아야 한다!


화사한 봄 햇살이 포근하게 내려앉던 4월 초순, 인천과 부천의 경계에 위치한 인천산재병원 2층 병실에 박경모(가명) 관리사무소장이 누워 있다.
마침 간병인이 목에 연결된 플라스틱 관을 통해 가느다란 호스를 집어넣어 가래를 뽑아내고 있었다. “그르륵 그르륵” 가래를 뽑아 올리는 둔탁한 기계음이 고요한 병실의 침묵을 깨며 귓전을 자극한다. 그렇게 그는 2년 6개월이 넘도록 식물인간 상태로 누워 있다.
2011년 10월 어느 날 박 소장은 회원들과 함께 산에 다녀왔다. 인천시회 산악회 총무였던 그는 모든 준비를 도맡아 하면서도 늘 앞장 서 산에 올랐지만 그날만은 오르지 않고 버스에서 휴식을 취했다. 며칠 전부터 머리가 아프고 몸 상태도 좋지 않아 산행이 부담스러웠다. ‘몸살이려니…’ 가볍게 여기고 산악회원들과 헤어져 귀가한 그는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아침. 사무실에 박 소장이 출근하지 않았다. 전화를 해 봤지만 아무런 답이 없다. 40대 후반이 되도록 미혼이었기에 집에는 가족도 없었다. 걱정된 직원이 친한 동료 관리사무소장들에게 전화를 돌리던 중, 오후가 돼서야 박 소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몸이 안 좋으니 내일 출근하겠다는 전화였다. 많이 안 좋으면 병원에 가 보라고 했지만 그는 그저 “괜찮다”고만 했다.
그런데 다음날에도 또 나타나지 않았다. 평소 운동을 좋아하고 성실해 결근은커녕 지각조차 없던 그였기에 이틀 연속 출근하지 않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심각성을 느낀 직원이 급히 주변에 연락했고 동료 소장으로부터 연락을 받은 여동생이 박 소장의 집 문을 따고 들어갔을 때 그는 방에 쓰러져 있었다. 곧바로 119 구급대를 통해 인근 병원으로 옮겼지만 상황을 돌이키기에는 너무 늦어 버렸다. 의사는 급히 뇌수술을 받아야 생명을 건질 수 있겠지만 의식이 정상적으로 돌아올 확률은 희박하다고 했다.
주변 사람들은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상황은 긴박했고 슬퍼할 겨를이 없었다. 시급히 움직여야만 했다. 주변 관리사무소장들과 입주자대표회의, 부녀회, 노인회 간부 등이 모여 대책을 논의했다. 한 단지에서 10여 년을 근무한 박 소장이었기에 다행히 입주민들의 신뢰가 깊었다. 많은 사람들이 역할분담해 움직인 덕분에 산재 승인을 받아 치료비 문제는 한 숨 돌릴 수 있게 됐다. 간병인의 도움도 받을 수 있었다.
주변의 정성이 통한 것일까. 뇌수술 후 산재병원으로 옮긴 그에게서 한 줄기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기초적인 의사표현이 가능할 정도로 의식이 돌아온 것이다. 정상생활은 아득했지만 동생과 간병인은 그를 휠체어에 앉혀 병원 내에서 열리는 일요예배에도 함께 참석했고 온 몸을 닦고 주무르며 끊임없이 말을 시켰다. 처음 배우는 아기수준에도 못 미쳤지만, 그가 포기하지 않는다면 하늘도 그를 버리지 않을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그렇게 실낱같던 희망은 채 1년을 버티지 못했다. 갑자기 2차 쇼크가 와 숨조차 쉬지 못하는 혼수상태에 빠진 것이다. 의사와 간호사 여럿이 매달리고 가능한 모든 수단이 동원됐다.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보는 이가 더 고통스럽다는 ‘생명연장’ 조치 덕에 그나마 숨은 쉴 수 있게 됐지만 결국 그가 아닌 사람이 됐다. 어린애 같던 정신조차 그의 몸에서 빠져나가고 말았다. 그렇게 그는 혼자서 기약 없는 깊은 잠에 빠져 들어버렸다.
▲인천산재병원에 누워 있는 박경모(가명) 관리사무소장. 목 부분에는 산소공급과 기도 및 식도 청결을 위한 관이, 배 부위에는 영양소 공급을 위한 관이 연결된 채로 2년 6개월째 누워있다. 뇌 대수술로 인해 머리가 함몰되고 얼굴도 변형돼 의식뿐 아니라 외모까지 다른 사람이 돼 버렸다.   
박 소장은 4남매의 맏이로 태어났다. 아버지를 일찍 여읜 탓에 어려서부터 가장 역할을 해야 했다.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고 억척스럽게 돈을 모아 동생들을 공부시켰고 시집, 장가도 보냈다. 조카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다 들어주는 ‘천사표 삼촌’이었던 그는 자신의 혼기를 멀찌감치 놓쳐버려 변변한 연애 한 번 해보지 못했다. 그가 이제 정말 천사가 되려는 것일까….
그에게는 아직 노모가 살아계신다. 연로한 어머니는 치매를 앓고 있다. 어머니는 치매로 인해 수년 전부터 요양원에 입원했고 뇌출혈로 쓰러진 장남을 단 한번 볼 수 있었다. 자식과 손자들의 부축을 받아 잠시 외출 나온 어머니는 다행히 장남을 알아봤고 한참동안 아들의 얼굴을 쓰다듬고 이름을 부르며 눈물 흘리다 다시 요양원으로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현재 어머니의 요양병원비는 박 소장이 전액 부담하고 있다. 산재보험에서 지급되는 휴업급여로 어머니의 입원치료비를 내고 있는 것이다. 간병인으로부터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먹먹해진다. 뇌출혈로 의식을 잃고 식물인간이 돼 기약 없이 병실에 누워 있는 아들, 그리고 그 아들의 산재급여로 요양병원에서 치매를 치료 중인 어머니. 세상에 이런 아이러니가 또 있을까.
주변 동료들은 “병들고 아픈 어머니 때문에 박 소장이 차마 눈을 감지 못하는 모양”이라며 한숨을 내쉰다.
어머니의 병원비를 내고 남는 몇 푼 안되는 돈은 알뜰한 여동생이 차곡차곡 모아두고 있다. 동생들을 위해 평생 고생만 해 온 오빠가 회복되면 먹고 싶은 것 실컷 먹이고 가보고 싶은 곳 실컷 구경시켜주고 싶단다. 박 소장은 누이의 간절한 소망을 언제쯤 들어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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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석  webmaster@hap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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