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문화의 여유로움을 찾아서…



 
김 준 연 여행객원기자
기다림은 설레임이고 희망이다(blog.naver.com/ssolonsun.do)
 
 
여행은 곡선이다.

떠나며 만나는

풍경과 사람들 속에서

내 생각의 편린을 찾는

한옥의 처마선 같은

여유로움이다
 
 
 
▲지안재
2013년 여름은 정말 지독하게도 햇살이 따갑다. 여행이 좋아 내 여행길마다 동행하는 친구에게 조차 떠나자는 말을 꺼내기 미안할 정도로 무더위가 무섭다. 그래도 어디든 떠나야 호흡을 영속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또 짐을 꾸려 떠나 본다. 2014년 지리산 방문의 해를 맞아 지리산권 3도 7개 시군의 관광자원을 공동으로 개발하고 널리 알리기 위해 지리산권관광개발조합이 설립됐다고 한다. 그 지리산 자락으로 한여름의 여행을 떠난다. 초록이 짙은 지리산 자락 산삼의 고장 함양으로….
천년을 이어 온 인공 숲이 숨 쉬는 함양은 오지 중에 오지였지만 대진고속도로가 생기면서 수도권에서도 당일여행이 가능한 곳이다. 좌안동 우함양이라 일컬을 정도로 뿌리 깊은 양반문화와 전통건축 예술이 빛을 발하는 서원과 정자는 풍류를 즐겼던 선비들의 여유로움을 엿볼 수 있는 곳이다. 그곳에서 나만의 여유를 찾고 싶었다.
내가 여유를 찾을 함양은 골 깊은 지리산의 품에 안긴 고장으로 산 좋고 물 맑은 고장답게 풍경이 빼어난 곳곳에 자리잡은 정자가 바람과 함께 어울린다. 경상도 유림을 대표하는 지역답게 양반 사대부와 관련된 문화재도 많아서 역사를 배우며 여행하기에 딱 맞는 고장이기도 하다. 함양 화림동계곡의 선비문화 탐방로는 우리 선조들의 멋과 풍류를 제대로 느껴볼 수 있는 트래킹 코스로 지리산 둘레길 못지않게 인기가 있다. 덕유산 자락에서 시작된 남강천을 따라 풍경이 멋진 곳에는 어김없이 정자가 자리 해 여행객들의 시선을 빼앗는다. ‘자연에 내가 거하고 내가 자연에 거한다’는 뜻을 지닌 거연정과 군자정, 동호정 등이 대표적인 정자인데 이번 여행엔 더운 날씨로 그 탐방로를 걷지 못해 아쉬웠다.
▲서암정사 대웅전    
함양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 상림숲이다. 상림숲은 통일신라시대 때 연암 최치원이 이곳 천령군의 태수로 와서 조성했는데 평지에 펼쳐진 숲으로 초가을의 붉은 꽃무릇과 낙엽이 춤추는 늦가을이 절경이다. 한 여름의 용추계곡과 용추폭포는 더위를 식히기에 그만이지만 많은 피서객들로 차량이 밀려 결국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상림숲과 용추폭포, 화림동계곡은 늦가을에 일정을 잡아 꼭 다시 와야겠다. 이번 함양여행은 산청을 거쳐서 넘어갔기에 지리산 자락을 따라 속세의 아둔함을 떨치며 벽송사의 부속 암자로 ‘지리산의 하늘정원’으로 불리는 서암정사가 시작이었다.
한국의 3대 계곡으로 유명한 칠선계곡을 마주하는 천혜의 절경에 자리한 서암정사는 ‘지리산에 펼쳐진 화엄의 세계’라는 별칭으로도 불린다. 벽송사의 원응 스님이 자연 암반에 불상을 조각하고 불교의 이상세계를 의미하는 극락세계를 그린 조각법당 등을 10여 년간에 걸쳐 완성했다고 한다.
서암정사 내에는 자연의 암반에다 굴을 파고 조각을 해 불교예술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석굴 법당, 사자굴, 대방광문, 광명운대 등이 있는데 정말 사람의 힘으로 이 많은 불상이 가능했을까 하는 존경의 생각이 들었다. 석굴법당을 지나 비로전에 오르면 멀리 지리산 천황봉이 보이는데 그 풍경은 가슴을 탁 트이게 했다. 속세에서 묻혀 온 매연 섞인 바람들 모두 훌훌 털어 버리고 지리산을 넘나드는 거친 바람 속에서 조그만 여유라도 담고 가고자 한다. 가을이면 더 멋들어진 풍경 일거라 생각하며 지리산 관문의 마지막 쉼터 인 오도재를 지나 지안재에 잠깐 차를 세웠다.
▲정일품 명가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된 오도재(지안재)는 사진을 좋아하는 여행객들의 출사 장소로 유명세를 떨치는 곳이다. 우리 선조들의 여유로움은 곡선미와 일맥상통 한다고 생각하는데 고택 기와지붕 처마선의 아름다움은 다들 인정 할 것이다. 바로 지안재 도로가 우리 선조들의 아름다운 그 멋진 곡선미를 현대에 재현한 듯 느껴지는 곳이다.
함께 한 여행지기들의 커다란 탄성 속에서 카메라 셔터소리도 만만치 않게 크게 들렸다.
나도 잠깐 앵글에 몇 장 담고 습관처럼 믹스커피 한잔을 마시며 지리산에서 달려 온 바람과 통성명을 했다. 지난해에 다녀갔는데 나를 기억하냐고…여행은 이렇게 자연하고도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여유를 주는 듯하다. 누가 알아주든 말든 오직 내 감정에 취해서….
오늘 함양여행의 종착지는 개평마을이다. 일두 정여창선생의 고택과 16대손인 정도상님이 운영하는 정일품명가의 한옥에서의 하룻밤이 기대됐다. 앞에서 얘기 했듯이 함양의 대표적인 선비가 일두 정여창 선생이다. 일두고택은 3천여 평의 대지에 12동의 건물이 배치된 남도지방의 대표적인 양반 고택으로 솟을대문에 나라에서 내린 정려패인 효자문 문패가 다섯 개나 걸려 있다. 정려패가 하나만 있어도 그 가문을 알아준다고 하는데 일두고택에는 다섯 개나 걸려 있으니 대단한 가문이라 하겠다.
사극 토지의 촬영 무대이기도 한 일두고택 사랑채의 처마는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을 향해 비상하는 형상인데 위엄이 느껴질 정도였다. 사랑채 사랑마당 한편에는 돌과 나무 화초들로 석가산을 만들었던데 보랏빛 맥문동꽃이 은은하니 옛 시간을 내 발끝으로 들이미는 듯 느껴졌다. 일두고택이 있는 개평마을은 지형이 마치 댓잎 네 개가 붙어 있는 개(介)자 형상이라 마을에 우물을 파면 안 된다는 전설이 있었는데 일두고택 안채에 우물을 판 후 일두 가문의 가세가 기울었다는 이야기를 16대손인 정도상 선생에게 들었다.
일두 정여창 선생이 산책을 즐기던 산책로 초입에 위치한 전통한옥체험장 정일품명가는 일두 선생의 16대손인 정도상님이 운영하는 곳이다. 정일품명가의 부부송이 심어진 곳에 서면 개평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정일품명가는 2년 전에 하룻밤 묵은 적이 있어 주위 풍경을 알고 있기에 초가채에서 묵기를 원했는데 이미 예약이 돼 있어 아쉬웠다.
금산, 토산, 수산의 기운이 뭉쳐진 자리에 지어진 한옥 학선당에 여장을 풀고 개평마을과 정여창선생의 이야기를 찻잔의 여유로움 속에서 들으며 함양의 첫날밤을 밝혔다. 정일품명가에서는 전통한옥체험뿐만 아니라 전통음식체험과 전통문화체험도 할 수 있으니 아이들과 함께 가족여행지로 좋을 듯하다. 함양의 상림숲과 선비문화탐방로에 가을이 내리고 낙엽들이 비보이처럼 거칠게 춤을 추는 날 우린 다시 떠나도 좋으리라. 절대 후회하지 않으리라.
 
 
한옥호텔/전통고택체험, 전통음식체험장, 전통차와 족욕체험, 전통문화체험

정일품명가(대표 정도상 : 010-3715-9921/055-964-8949)
경남 함양군 지곡면 개평리 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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