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지방경찰청 시흥경찰서 허 준 구 생활안전계장
#시흥경찰서는 지난 9월 한국셉테드학회와 업무협약(MOU)을 체결한 바 있습니다. ‘셉테드’란 무엇인지, 그리고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지 소개 바랍니다.
셉테드를 말 그대로 풀어보면 ‘환경설계를 통한 범죄예방’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적절한 건축설계나 도시계획 등 도시 환경의 범죄에 대한 방어적인 디자인을 통해 범죄가 발생할 수 있는 기회를 줄이고, 도시민들이 범죄에 대한 두려움을 덜 느끼도록 해 궁극적으로는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종합적인 범죄예방 전략을 말합니다. 셉테드의 기본개념은 건축학자인 오스카 뉴만의 ‘방어공간(Defensible Space)’ 개념에서 유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뉴만이 정의한 ‘방어공간’은 거주자가 공간을 통제할 수 있도록 주거공간에 실질적 혹은 상징적 방어물이나 영향력, 감시기회 등을 확대시켜 놓은 공간을 말하는 것으로, 접근과 감시가 용이하게 이뤄질 수 있는 도로를 통해 영역성을 창조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뉴만은 이를 통해 아파트 등 공동주택에서의 공간 관리 및 설계와 범죄와의 관련성을 증명해내며 자연적 감시, 접근통제, 영역성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습니다. 셉테드의 적용은 다양합니다. 예를 들면 기본적으로 아파트 등 공동주택의 경우 1~2층 등 저층 창문에 방범창을 달거나 가스배관에 덮개 및 요철 등을 설치해 범죄를 예방할 수 있고, 복도에서 엘리베이터 내부를 볼 수 있도록 투명유리로 설치하거나 탑승한 사람이 뒤를 확인할 수 있도록 내부에 거울을 설치함으로써 범죄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또한 인적이 드문 지하주차장에 피트니스센터 등 휴게시설을 설치해 입주민들의 이용을 유도함으로써 지하주차장을 안전한 공간으로 만드는 방법도 셉테드의 좋은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난달 ‘여성과 아동이 안전한 사회를 위한 셉테드 및 범죄예방 전략’ 세미나에서 발표한 ‘공동주택 범죄예방환경 우수단지 인증사례’에 대해 설명해주십시오.
전체 면적의 65%가 개발제한구역인 시흥시에는 군자지구, 시화MTV, 은계보금자리 등 대단위 개발추진구역이 들어서 있습니다. 이로 인해 전체 주택 10만7,632호 중 75%에 달하는 8만911호가 아파트로 구성돼 있는 실정입니다.
특히 시흥시의 아파트는 10년 이상 노후화된 아파트가 85%를 차지하고 있어 방범시설을 포함한 단지 내 환경이 대체적으로 미흡해 셉테드 도입이 절실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이에 시흥시아파트연합회와 공동주택 내 방범시설 체제 구축 활성화를 위한 MOU를 체결함으로써 셉테드 도입의 첫 걸음을 내디뎠습니다. 이후 시흥시, 한국셉테드학회와의 공조체제를 바탕으로 ‘여성과 아동이 안전한 도시 만들기’를 위한 MOU를 체결한 데 이어 한국셉테드학회로부터 셉테드 인증을 획득한 ‘공동주택 범죄예방환경 우수단지’를 선정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를 위해 시흥시 및 시흥경찰서 임원과 시흥시아파트연합회 회원, 그리고 주택관리사 등으로 구성된 평가위원회와 한국셉테드학회 임원으로 구성된 자문위원회를 발족한 바 있습니다.
#셉테드 도입과 관련해 향후 추진코자 하는 계획은 무엇입니까?
최근 급증하고 있는 아파트 등 공동주택 내 범죄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셉테드 도입과 더불어 이에 대한 공감대 형성, 그리고 체계적인 관리를 지속할 수 있는 동기부여가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따라서 아파트의 입주민은 물론 동대표, 관리사무소장 등을 대상으로 셉테드의 이해를 돕고 참여 경로와 방법을 제시할 수 있는 교육을 마련할 계획입니다. 아울러 ‘2013년 공동주택 범죄예방환경 우수단지 인증’ 사업계획 수립 시 철저한 사전검토와 함께 노후화된 아파트가 개선된 모습을 주기적으로 모니터링 하는 등 우수단지 인증 사업이 성공적 모델로 정착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 시흥경찰서의 방침입니다. 나아가 군자배곧신도시, 택지개발지구 내 공원 설계 등 대규모 개발사업과 공공시설 등 건축디자인에 셉테드가 반영될 수 있도록 시흥시에 대해 지속적인 요청도 병행할 예정입니다. 또 복잡한 구조물, 노후화된 가로등, 불필요한 담장 등으로 인해 슬럼화 된 외국인 밀집지역에 셉테드를 도입함으로써 최근 사회적인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외국인 범죄에도 대응코자 합니다. 재정 등 현실적인 문제도 고려할 사안입니다. 셉테드 도입의 필요성과 당위성을 인정함에도 불구하고 재정상의 문제로 포기할 수밖에 없는 단지도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 내년 상반기에는 시의회의 협조를 얻어 셉테드 도입에 명분을 더하고 재정 지원 또한 이끌어낼 수 있도록 관련 조례 제정에도 힘쓸 계획입니다.
#아파트 등 공동주택 입주민과 관리주체 등에 전할 당부의 말이 있다면?
경찰은 모든 국민들이 범죄로부터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 경찰의 업무가 생활민원 등 다양한 분야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해짐에 따라 수적으로 한계를 드러냈다는 판단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셉테드는 부족한 경찰력의 한계를 보완해줄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사전 건축 단계에서 셉테드 인증을 받는 아파트 단지가 늘어날수록 경찰은 보다 체계적인 시스템 하에서 범죄가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사전에 인지하고, 이를 관리 및 예방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아파트 단지에 셉테드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불가항력적으로 재정적인 부담이 수반될 수밖에 없습니다. “나만 아니면 돼” 또는 “설마 우리 아파트에서 그런 일이 생기겠어?”라는 안이한 생각으로 이를 회피한다면 우리 가족, 우리 이웃들이 각종 범죄의 사각지대로 내몰리게 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누구보다 아파트 관리주체의 역할이 큽니다. 입주민들에게 셉테드의 필요성을 각인시킴으로써 “우리 아파트의 안전은 우리가 스스로 지켜야 한다”는 인식의 전환을 이끌어낼 수 있을 때 비로소 여성과 아동이 안전한 아파트를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