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한국피난기구협회 김 문 찬 회장


 
 
 오늘날 대표적인 주거형태로 자리 잡은 아파트는 입주민에게 여러 가지 편리함을 제공한다. 예컨대 날로 지능화돼가는 범죄로부터 안전을 확보할 수 있는 통합전자경비시스템, 입주민의 웰빙생활을 위해 들어선 휘트니스클럽, 공기정화를 위한 자연환기시스템, 초고속통신으로 안정된 인터넷 이용 등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차고 넘친다.
 하지만 아파트 등 공동주택 입주민을 비롯해 건축관계자들이 간과한 것이 있다. 아파트가 화재로부터 얼마나 안전하며, 화재의 초기진압이 실패했을 경우 합리적인 피난을 유도하는 피난기구가 올바르게 설치돼 있느냐는 것이다.
 (사)한국피난기구협회 김문찬 회장은 “일반국민과 건축관계자들이 화재에 대해 갖는 안전의식이 부족하다는 점과 화재에 관련된 제도적 장치가 허술하다는 점을 인식하고 합리적인 피난방법 등에 대한 연구 및 개선을 통해 국민의 생명을 보호해야 한다”고 말한다.
 날이 갈수록 놀라운 시스템이 도입돼 입주민에게 편리함과 쾌적함을 제공하는 아파트라고들 하지만, 화재와 관련된 피난기구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은 답보상태도 아닌 퇴보상태라며 우려하는 김 회장을 만나 아파트 등 공동주택에서 피난기구가 차지하는 중요성 등에 대해 들어보고 향후 나아갈 방향을 모색해본다.
 
 
 
 (사)한국피난기구협회의 궁극적인 설립취지는?

 우리가 화마라는 재앙에 대응해 취할 수 있는 조치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뉘며, 이는 화재를 진압하는 활동을 펼치거나 화재를 피해 피난하는 것입니다. 그동안 화재진압과 관련해 제도적으로나 기술적으로 많은 발전이 있었지만 상대적으로 피난에 대한 관심은 부족한 것이 작금의 현실입니다.
 최근 우리나라는 주거환경이 고층화되고 주거공간은 밀폐화되고 있는 상황으로 화재가 발생할 경우 초기진압의 어려움과 피난경로의 상실로 인해 인명피해가 증가하고 있는 실정이며, 이에 대처한 효과적이고 안전한 피난을 고려한 새로운 관심과 접근이 필요한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이러한 사항들을 토대로 화재 발생 시 피난 등에 관련된 문제점을 다방면으로 개선해 나가야 한다는 점과, 화재에 대비한 예방적인 안전조치와 화재가 발생했을 경우 안전한 피난을 위한 국민적 계도활동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음을 유념하고 화재로부터 안전한 사회를 구현하는데 기여하고자 설립된 단체가 (사)한국피난기구협회입니다.
 
 
 
 아파트 등 공동주택에서 피난기구가 중요시되는 까닭은?

 아파트는 구조적으로 현관문을 출입구로 한 밀폐된 구조이고 고분자 가연성 내장재와 인테리어 소품 등으로 인해 화재 발생 시 연소 확대와 연기의 확산 속도가 무척 빠릅니다. 뿐만 아니라 인체에 치명적인 유독가스가 발생하는 등 발화 후 2~3분 이내에 생명을 위협당하는 절망적인 상황으로 치닫게 됩니다.
 그러나 화재진압을 위한 환경은 열악합니다. 고층아파트의 경우 고가사다리차는 전개 공간의 확보가 어려워 무용지물로 전락할 위기에 처해 있으며, 아파트 단지의 주차차량 및 조경 등의 문제로 인해 소방차가 화재현장 진입에만 허비하는 시간도 만만치 않아 사실상 화재의 초기진압은 어렵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화재로부터 안전한 지역으로 피난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하지만 화재가 발생하면 대부분의 아파트 현관문에 부착된 디지털 도어락 시스템(Digital Doorlock Sys tem)이 작동하지 않아 출입문은 봉쇄되고 화재상황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현관문을 이용할 수 없는 상황에서 제2의 피난경로가 필요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2방향 피난경로의 확보에 부합하는 것이 피난기구입니다.
 아울러 지난 2005년 12월부터 아파트의 발코니 확장이 합법화되면서 화재발생에 대비한 대피공간 설치를 의무화하고 있지만, 이렇게 설치된 대피공간은 화재 발생 시 피난장소로서는 기능상 문제가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입니다. 설치 의무화로 마련된 대피공간을 수납공간 정도로만 여기고 있는 아파트 입주민들이나 시공사들의 잘못된 인식의 문제가 피난기구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아파트의 피난기구가 안고 있는 문제점 및 극복 방안?

 현재 소방관계법이 정하는 피난기구에는 피난사다리, 완강기, 간이완강기, 구조대, 공기안전매트, 피난밧줄 등이 있지만 이들 피난기구는 현재 우리나라 아파트 화재환경에서 효과적인 피난을 담보하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피난기구는 10층까지만 적용됩니다. 10층 이상에서는 어떤 대책도 없는 상황이며, 구조적으로도 효과적인 피난에는 어려움이 존재합니다. 실례로 완강기의 경우 옥외의 위험한 상황에서 사용되므로 일반인이 화재를 피해 능숙하게 사용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릅니다. 또 공기안전매트의 경우 소방관 4명 이상이 7~8분 이상의 시간을 할애해야만 설치가 완료되며, 설치가 완료된다고 하더라도 10층 이상의 높이에서는 화재를 피해 뛰어내리는 입주민이 정확한 낙하지점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물론 근래 거듭되는 소방기술의 발전으로 새로운 피난기구가 개발되고 있으나 실제로 사용되고 있지 못한 경우가 허다합니다. 이를 직시하고 아파트의 주거환경에 걸맞은 새로운 피난기구들이 상용화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바닥매립식 피난사다리입니다. 이는 아파트의 발코니나 다용도실에 설치해 화재가 발생했을 경우 발코니에 매립된 접이식 피난사다리를 펼쳐서 바로 아래층 발코니로 대피할 수 있도록 고안된 것으로 일본에서는 20여년 전에 법제화돼 아파트를 비롯한 대부분의 건축물에 적용하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주거환경에 적합한 바닥매립식 피난사다리가 개발돼 서울 뚝섬지구 초고층아파트와 광교신도시 에듀타운 등에 설계 반영되고 있습니다. 또한 아파트의 발코니를 확장할 경우 적용이 가능하도록 건축법 시행령의 개정절차가 진행되고 있어 빠르면 올해 연말이면 시행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화재와 관련한 아파트 관리제도의 개선해야 할 점은?

 사실상 아파트에 거주하는 대다수의 입주민은 화재에 무관심하며, 화재가 발생했을 경우에 취해야 할 올바른 대처법을 정확히 숙지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아파트를 건축하는 시공사 역시 화재 발생 시 생명을 보존할 수 있는 피난시설에 대해서는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피난기구에 얽힌 한 가지 일화가 있습니다. 서울시 서초구 양재동에 소재한 코트라(KOTRA)외국인 창업지원센터에 입주를 계획하고 있는 외국인이 있었습니다. 이 외국인은 화재가 발생했을 경우 이용할만한 피난기구가 없다는 사실을 알아채고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고 합니다. 결국 그는 적절히 대응할 수 있는 피난시설의 설치를 요구했고, 건축주는 뒤늦게나마 바닥매립식 피난사다리를 설치했다고 합니다.
 이 외국인의 사례처럼 우리나라 아파트 등 공동주택의 입주민에게는 무엇보다도 화재로부터 안전할 수 있는 피난기구에 대한 의식 고양이 요구됩니다. 이를 위해서는 아파트 관리주체가 피난기구의 중요성을 아파트 입주민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계도활동을 수행해야 할 것으로 여겨집니다.
 예컨대 평상시에도 유비무환의 정신으로 자신이 살고 있는 아파트에서 화재가 발생했을 때 안전하게 피난할 수 있는 피난경로를 파악할 수 있도록 홍보 및 교육을 진행한다거나, 아파트 단지의 조성과 관리 측면에서 소방통로의 확보, 화재에 대비한 피난기구 설치와 사용방법 교육, 피난기구를 이용한 주기적인 훈련 등을 통해 혹시 발생할지 모르는 화재에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준비태세를 갖추기 위한 엄격한 관리제도가 정립돼야 합니다.
 
 
 
 끝으로 아파트 등 공동주택 입주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

 우리나라 아파트 등 공동주택의 주거문화는 최근 들어 친환경과 안전한 주거환경 확보에 중점을 두고 있지만 날로 초고층화되고 있는 건물들과 미비한 화재피난기구로 인해 해마다 인명피해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오늘날 아파트는 과거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편리하고 쾌적해지고 있지만 정작 사람의 생명과 직결되는 화재안전과 관련된 시설과 환경은 발전하기는커녕 뒷걸음질치고 있습니다.
 아파트는 건축하는 단계부터 화재가 발생했을 경우를 염두에 두고 안전하게 생명을 지킬 수 있는 든든한 아파트가 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인 장치가 필요합니다. 덧붙여 이미 지어진 아파트라 할지라도 화재로부터 효과적인 대피를 가능하게 하는 피난기구를 설치하는 등 화재에 관련된 제반안전조치에 만전을 기해야 함을 당부드립니다.
 이로써 전국의 모든 아파트가 안전 아파트로 거듭날 수 있도록 해 쾌적함에 안전함을 더한 주거생활이 가능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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