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타리카는 양질의 커피를 생산하기 위해 아라비카(Arabica) 종 이외의 원두 생산을 금지하는 법을 만들었다. (출처 : Unsplash)
코스타리카는 양질의 커피를 생산하기 위해 아라비카(Arabica) 종 이외의 원두 생산을 금지하는 법을 만들었다. (출처 : Unsplash)

‘콜럼버스가 이끈 스페인 탐험대는 이 지역을 Costa(해안) Rica(풍요로운)라고 이름 붙였다. 배에서 바라본 해안에 녹음이 우거져 있었기 때문이다.’

‘코스타리카의 지도자들은 프랑스 문화를 받아들여 커피 생산으로 나라를 풍요롭게 하려 했다. 그러던 참에 영국 무역선이 나타나 커피 수출이 시작된다. 시기도 마침 크리스마스라서 성실한 이들에게 하늘이 주는 선물과도 같았다.’
 

“커피 애호가들이 죽어서 가고싶은 곳”

일본의 원로 언론인 이토 치히로(伊藤千尋)가 쓴 책 ‘늠름한 소국’에 담긴 코스타리카 이야기다. 저자는 책에서 “세계가 글로벌리즘 풍조로 내몰려 인간성을 상실해가는 시대에 경제적으로 곤궁할지라도 인간으로서 마음의 풍요로움을 추구하며 자립한 사회가 보인다”고 코스타리카를 칭찬한다. 그는 “독자적인 가치관을 견지하고 늠름하게 주장하는 모습이야말로 진정한 대국의 그것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고 덧붙였다.

그렇다. ‘땅덩어리가 크고, 경제력이 튼튼하다’고 해서 결코 대국이 아니다. 인간성을 잃지 않고 독자적인 가치관을 지녀야 한다. 늠름하게.

‘늠름한 소국’은 부제를 ‘빛나는 작은 나라들’로 했다. 그리고, 쿠바·우즈베키스탄·미얀마를 제치고 코스타리카를 선두에 내세웠다. 알려진 대로 코스타리카의 자연보호는 남다르다. 자연을 파괴하지 않기 위해 최대한 도로를 만들지 않고, 동물들이 지하로 오갈 수 있도록 터널을 뚫기까지 한다. 편리성만 강조하며 산허리를 잘라 길을 내고, 무분별하게 벌목해 집을 짓는 우리가 크게 반성해야 할 듯하다.

풍요로운 해안의 나라 코스타리카에서는 풍요로운 커피가 나온다. 코스타리카의 커피 세계로 들어가 본다.

“‘사람은 죽어서 천국에 가길 원하고,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은 코스타리카로 가길 원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서울 압구정커피집 허형만(66) 대표의 글이다. 글만으로도 ‘커피를 사랑하고, 더불어 코스타리카 커피를 좋아한다’것을 감지할 수 있다. 출처는 어디일까? 허 대표는 필자와의 통화에서 “책 ‘The Complete Guide to Coffee(커피에 관한 완벽한 안내서)’에 들어 있는 글”이라고 말했다.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가고 싶은 코스타리카의 커피는 어떤 맛일까? 허 대표의 말이다.

“커피의 맛이 고상하고 젠틀하다고 할까요? 정리 정돈이 잘 돼 있고, 깔끔합니다. 다크초콜릿 맛이 있고 바디감 또한 풍부한 커피이지요.” 

그는 “코스타리카는 언젠가 꼭 가보고 싶은 곳”이라며 “보름달 아래 꽃이 만개한 커피 농장에서 재스민 향의 커피 꽃향기를 맡으며 거닐고 싶다”고 말한다. 

우리나라에서 코스타리카 커피는 대중적이지는 않지만 커피마니아들 사이에서는 인기가 있다.

“코스타리카 커피 중에서 대체로 따라주(Tarrazu)가 인기가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린다비스타(Lind Vista) 레드 허니(Red Honey)를 권합니다. 은은한 봄꽃향기, 열대과일의 상큼함, 캐러멜과 밀크 초콜릿의 달콤함과 부드럽고 깔끔한 뒷맛이 일품입니다.”

서울 여의도에서 ‘SC Coffee’숍을 운영하는 황용익(54)대표의 말이다.

실제로 코스타리카 커피는 풍부한 신맛이 특징이다. 쓴맛이 적고 진한 단맛과 깊은 감칠맛을 지니고 있어서 균형 잡힌 커피라고 할 수 있다.

코스타리카는 어떤 곳이며 커피는 언제부터 재배됐을까. 코스타리카는 중앙아메리카의 남부, 멕시코 아래에 있다. 인구는 약 500만 명, 국토 면적은 5만㎢다. 카리브해와 태평양을 끼고 있으며, 국토를 횡단하는 화산대에 따라 해발고도가 차이 나는 지형이 특징이다. 또한 열대우림이 국토의 40% 이상을 차지하고 있어 커피나무 재배에 좋은 환경을 지니고 있다.

이 나라는 1779년 쿠바에서 커피를 들여왔다. 그 후 코스타리카의 커피 산업이 점점 발전해 19세기 초에는 다른 나라에 수출할 수 있을 정도의 생산량이 됐다. 

이러한 코스타리카 원두의 안정적인 공급과 브랜드나 품질을 지키기 위한 목적으로 1933년 코스타리카커피협회(CICAFE)가 설립됐다. 코스타리카커피협회는 생산자에 대한 기술적인 지도나 생산·수출의 관리·환경 파괴 대책 등을 시행하고 있다.
 

화산재 품은 토양, 풍부한 영양분 제공

기후 또한 커피와 궁합이 맞다. 우기와 건기가 뚜렷해서 커피나무 재배에 최적이다. 또한 적도의 거의 바로 아래에 위치해 안정적인 일사량도 장점이다. 일조량이 많은 코스타리카에서는 커피나무에 그늘을 줄 수 있도록 셰이드 트리(shade tree)를 활용하고 있다. 셰이드 트리는 커피농장 울타리나 커피나무 옆에 심어 과다한 일조량을 억제하는 역할을 하는 나무를 말한다. 셰이드 트리는 토양의 변색을 막기도 하고 낙엽이나 마른 가지가 커피나무의 천연 유기물이 되는 등의 효과가 있다.

코스타리카의 화산재로 토양에 풍부한 미네랄과 커피나무 재배에 좋은 영양분을 제공한다. (사진)아레날 화산 (출처 : Unsplash)
코스타리카의 화산재로 토양에 풍부한 미네랄과 커피나무 재배에 좋은 영양분을 제공한다. (사진)아레날 화산 (출처 : Unsplash)

코스타리카의 화산대도 커피 재배에 있어서 큰 장점이다. 화산재에 의해 토양이 풍부해지고 품질 좋은 생두를 생산할 수 있어서다. 화산재의 토양에는 미네랄이 풍부해서 커피나무 재배에 좋은 영양분을 제공한다. 

코스타리카는 7개 지역에서 커피나무 재배와 원두 생산이 이뤄지고 있다. 지역마다 기후와 환경이 달라 커피의 풍미도 다르다. 또 농원에 따라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1200m 이상의 고지에서는 향과 신맛이 인상적인 커피를 재배한다. 해발 1000m 이하의 지역에서는 가벼운 맛의 커피를 재배하고 있다.

코스타리카는 연간 7만6000톤 정도의 원두를 생산하고 있다. 그 양은 세계 20위 안에 든다. 농장 숫자도 8만 개 이상으로 알려져 있다. 그중 90%가 5헥타르 미만의 소규모 농원이다. 하지만 이점이 있다. 소규모기 때문에 커피나무 하나하나를 정성스럽게 다룰 수 있고, 그로 인해 질 좋은 생두가 완성되고 있는 것이다.

국토 면적은 작지만 거의 절반이 원시림이며, 전 세계 생물종의 5%가 서식할 정도로 생물자원이 풍족한 국가다. 이 나라의 한 국립공원에 서식하는 조류의 종수는 북미 전체의 종수보다 훨씬 많다. 전 국토의 23%가 국립공원으로 지정돼 있는 대표적인 환경보호 국가기도 하다.
 

국가 차원에서 법으로 커피 재배 관리

코스타리카의 전통적인 커피 추출방법은 융드립 방식이다.(출처 : Unsplash)
코스타리카의 전통적인 커피 추출방법은 융드립 방식이다.(출처 : Unsplash)

코스타리카는 국가적인 차원에서 커피 재배를 관리한다. 1988년에는 아라비카(Arabica) 종 이외의 원두 생산을 금지하는 법을 만들었다. 양질의 커피를 생산하기 위해서다. 이 법률은 지금도 엄격하게 시행되고 있다. 코스타리카에서 생산되는 원두의 대부분이 스페셜티 커피인 것도 특징이다. 이 나라는 커피의 품질을 최대로 유지할 수 있는 습식 가공법(wet method)을 고집한다. 그래서 다른 나라와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한다. 

대표적인 커피 산지로는 산 호세(San Jose) 남쪽의 타라주(Tarrazu)와 린다 비스타(Lind Vista), 태평양 연안의 트레리오스(Tres Rios), 브룬카(Brunca), 투리알바(Turrialba) 등이 있다. 생두의 크기는 비교적 작은 편이지만 상큼한 과일류의 신맛과 산도를 갖고 있어 고급 스트레이트 커피(straight coffee)나 블렌드 커피(blended coffee)에 적합하다. 코스타리카 생두의 품질 등급은 재배지 고도에 따라 8등급으로 나눠진다. 해발 1200m 이상에서 재배한 커피를 SHB(Strictly Hard Bean)로 표시하고 최상급으로 분류한다.
 

세계 곳곳서 세미나 여는 커피 단체도

커피의 엄격하고 철저한 품질관리를 맡은 기관과 단체들이 많이 있다. 대표적으로 커피 재배 지역의 보호와 기술 향상을 위한 국립커피연구소(ICAFE)와 생산과 소비를 홍보하기 위한 스페셜티커피협회(SCACR)가 있다. 1987년 설립된 국제커피협회주간은 매년 11월경 중남미·유럽·일본을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 커피 관련 기관과 종사자들이 모여 세미나를 개최한다. 세미나에서는 커피에 대한 정보 공유는 물론 품평회도 갖는다.

좋은 커피 콩을 고르는 코스타리카 사람들 (사진: 박영순 제공)
좋은 커피 콩을 고르는 코스타리카 사람들 (사진: 박영순 제공)

미국의 작가 마크 팬더그라스트(Mark Pendergrast)는 ‘매혹과 잔혹의 커피사’에서 코스타리카에 대해 이렇게 썼다.

‘커피투어에 연간 수만 명의 관광객이 모여들면서 코스타리카의 인기 관광객 순위에서 3위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커피에 관련해서 확실한 것은 하나뿐이다. 즉, 커피가 재배되고, 팔리고, 추출되고, 소비되는 곳에서는 그곳이 어디든 활기찬 논쟁·강한 소신·기분 좋은 대화가 펼쳐지리라는 사실뿐이다.’

작가는 1902년 어느 현자의 말을 인용했다.

‘최고의 이야기가 나오는 순간은 커피를 마시는 순간이다. 커피의 아로마가 영혼의 문을 여는 순간, 오랫동안 감춰져 있던 최고의 이야기가 흘러나오면 그 이야기는 날개를 달고 후대를 향해 비상한다.’

코스타리카에서는 지금 어떤 비상이 준비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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