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 사향고양이가 커피체리 먹고 배설한 씨에서 탄생
사람들이 포획해 우리에 가두고 커피열매 먹여 생산도

“루왁 커피요? 저희는 취급하지 않습니다. 원두가 비싸니까요. 아마도 특급호텔에서는 한잔에 5만 원쯤 할 것입니다.” 서울 여의도에서 커피숍을 운영하는 조진현(45) 씨는 이렇게 말했다. 그는 스페셜티 커피를 취급하는 전문점의 대표다. 

“저희 매장에서는 루왁 커피 원두를 15만 원에 판매하고 있습니다. 200g 기준입니다.” 대형 H백화점 종업원의 말이다. 케냐 AA·콜롬비아 수프리모 등 유명 원두보다 5배나 비싸게 판매되고 있었다. 

늦가을 단풍이 조금 남아 있던 날, 여기저기 문의해가며 루왁 커피 취급 전문점을 찾아 나섰다. 차의 흐름이 매우 느렸다. 2시간여 만에 도착한 경기도 가평의 커피숍. 하얀 벽면에 ‘세계 최고의 친환경 발효 루왁 커피 전문점’이라는 안내문이 큰 글씨로 쓰여 있었다. 

루왁 커피 한 잔을 주문했다. 진동벨이 울리고 커피를 만났다. 긴장된 마음으로 커피를 마셨다. 가슴 속까지 파고드는 듯한 깊은 맛과 고소함이 느껴졌다. 

사향고양이
사향고양이
야생에서 커피체리를 따먹는 사향고양이
야생에서 커피체리를 따먹는 사향고양이

커피숍의 팸플릿에는 ‘인도네시아 1400m 고지에서 야생하는 사향고양이가 자연스럽게 먹고 발효시킨 친환경 발효 루왁 커피입니다.’라고 소개돼 있었다. 확인할 방법은 없었다. 

우리가 흔히 루왁 커피라고 부르는 이것의 공식 명칭은 코피 루왁(Kopi Luwak)이다. 코피는 인도네시아어로 커피라는 말이고, 루왁은 사향고양이를 뜻한다. 시벳 커피(Civet Coffee)로 부르기도 한다.
 

커피 전문가들 사이에서 찬반론 거세

“그 커피 드셔보셨나요? 왜, 그 동물을 통한 커피요.”

영국 바리스타챔피언십(UKBC)에서 세 차례나 우승한 일명 바리스타챔피언 맥스웰 콜로나-대시우드(Maxwell Colonna-Dashwood)는 저서 ‘Coffee Dictionary’(커피 사전)에서 코피 루왁에 대해 이렇게 질문을 던진다. 그는 코피 루왁에 대해 이렇게 풀어간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커피 중에는 코피 루왁이라는 이름으로 판매되는 것이 있다. 코피 루왁은 ‘사향커피’라고 번역할 수 있는데, 유래는 이렇다. 자그마한 사향고양이는 숲을 돌아다니면서 가장 잘 익은 커피 체리를 선별해 먹는다. 생두는 사향고양이의 소화 과정을 거치면서 특수한 가공 과정을 거친다. 결국 몸 밖으로 배출된 커피는 이국적이면서도 희귀한 커피가 된다.”

코피 루왁은 커피 애호가들의 찬사를 받으며 세계에서 가장 비싸게 거래되고 있다. 주로 미국과 일본에 나돌았다. 현재는 공급량이 한정돼 있긴 해도 세계 각지에서 구할 수 있다. 

하지만 저자 콜로나-대시우드는 코피 루왁이 ‘커피의 맛보다는 마케팅 스토리 중심으로 시장을 리드하고 있다’고 평한다. 그러면서 이렇게 꼬집는다.

사향고양이를 우리에 가둔채 저질의 커피체리를 강제로 먹여 동물 학대 논란이 되고 있다.
사향고양이를 우리에 가둔채 저질의 커피체리를 강제로 먹여 동물 학대 논란이 되고 있다.

“현실은 이처럼 그럴듯하지 않다. 사향고양이들을 우리에 가두고 저질 커피를 강제 급식하는 탓에 심각한 동물권 침해가 발생한다. 더군다나 코피 루왁은 블라인드 테스팅에서 좋은 평가를 받아본 역사가 없다. 잘 짜인 스토리가 강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또 다른 세계적 커피 전문가 미국의 숀 스테이먼(Shawn Steiman)은 저서 ‘커피연구소’에서 코피 루왁에 대해 이렇게 정의한다.

“이야기의 진위와는 별개로 코피 루왁은 진귀한 상품이 됐다. 희귀성과 지나치게 높은 가격 때문에 이 커피는 스페셜티 커피 시장에서 자주 회자되고 판매된다. 그러나 가격이 너무 비싸서 이를 실제로 마셔본 사람은 소수에 불과할 것이다.”

그가 분석하는 코피 루왁의 탄생 배경은 더 흥미롭다. 책으로 다시 들어가 본다.

“네덜란드인들이 상업적인 목적으로 커피를 처음 인도네시아로 들여왔을 때의 일이다. 이들은 인도네시아 현지인들이 자신들이 재배하는 커피를 못 마시게 했다. 현지인들은 숲속에서 서식하는 사향고양이가 커피 체리를 먹으면 씨(생두)를 소화하지 못한다는 걸 발견했다. 실제로 씨는 소화관을 통과해 몸 밖으로 배설된다. 이 씨를 세척한 후 일반적인 커피와 동일한 준비 과정을 거치면 우리가 알고 있는 코피 루왁이 탄생한다.”

커피체리를 먹은 사향고양이의 커피 배설물.
커피체리를 먹은 사향고양이의 커피 배설물.

이 커피에는 식민지 문화가 서려 있다. 네덜란드는 1699년 자국의 식민지였던 인도네시아에 커피나무를 이식했다. 당시 현지인들은 자신들이 채취한 커피도 못 마시게 하던 네덜란드가 얼마나 원망스러웠을까. 이런 원망이 쌓이고 변해 코피 루왁이 발견된 것이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모르겠지만 코피 루왁은 오늘날 이렇게 진귀한 상품이 됐다. 어쩌면 커피의 맛보다는 희귀성으로 인해서 지나치게 높은 가격이 매겨졌을 것이다.

‘어떻게 하면 맛있는 커피를 마실 수 있을까?’ 커피의 발전은 커피 애호가들의 식을 줄 모르는 열정과 도전 때문이었다. 

커피 업계에 종사하는 전문가들만 그런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질 좋은 커피 한 잔을 마시기 위해 돈과 시간을 들이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이는 커피를 사랑하고 즐기려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인간의 관심은 동물에게는 잔혹사로 이어졌다. 야생 사향고양이를 남획해 우리에 가두고, 육식 사향고양이에게 억지로 커피 체리만을 먹여 대량생산한 것을 WILD(천연물)로 위장해 판매하기에 이른 것이다. 2013년 9월에 방영된 BBC의 다큐멘터리가 대표적인 사례다. 이 방송은 당시 세계적으로 큰 논란을 야기했다. 

본디 사향고양이는 자연 속에서 노닐다 잘 익은 커피 열매를 따 먹었다. 그런 고양이의 배설물이 진짜 루왁 커피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사향고양이를 잡아다가 우리에 가둬 온종일 커피 열매를 먹도록 한다. 다양한 열매를 따먹으면서 살아가는 사향고양이에게 온종일 커피 열매만을 먹도록 하는 것은 동물 학대가 틀림없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사향고양이를 포획해서 이들 농장에 파는 사냥꾼들도 많다.

코피 루왁은 어느 지역에서 나오는 것일까. 인도네시아의 수마트라·자바·술라웨시·발리 등에서 나온다. 이 밖에 필리핀과 남인도에서도 유사한 커피가 채취된다. 과거 베트남에서는 같은 종류의 말레이 사향고양이에 의한 것이 ‘족제비 커피’라고 불리며 시장에 나왔다. 현재는 인위적으로 커피콩을 발효시킨 것이 족제비 커피로 판매되고 있다.
 

로스팅한 코피루왁 원두.
로스팅한 코피루왁 원두.

 

세계 최대 소비지는 일본, 대만, 한국

세계 최대의 코피 루왁 소비지는 일본·대만·한국 등 아시아 국가들이다. 코피 루왁은 훌륭한 맛과 향미가 있다고 해도 원두커피로서의 품질이 가장 뛰어난 것은 아니다. 숙성 커피로서의 감칠맛은 과대평가된 점이 있다. 그런가 하면 ‘똥 커피(poo coffee)’라고 놀림을 받기도 한다. 태국에서는 코끼리에게 원두를 먹인 뒤 똥에서 찾아낸 원두로 만든 ‘블랙 아이보리(검은 상아)’가 커피 루왁보다 더 비싸게 거래된다.

“건강하지 못한 동물에게서 받은 커피 씨앗이 인간에게 행복을 선사할 리 없다. 커피가 이토록 폭력적이며, 사치나 과시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커피 인문 강의를 하고 있는 박영순 씨의 말이다. 그가 이어 설명한다.

“동물 배설 커피의 진정한 가치는 그리움이다. 인간의 손이 닿지 않는 깊고 깊은 야생의 한구석에서 맺은 커피 열매를 사향고양이를 통해서나마 만나고 싶은 자연에 대한 그리움.”

미국의 커피 전문가 조던 마이켈먼(Jordan Michelman)이 쓴 ‘커피에 대한 우리의 자세’에는 이런 내용이 담겨 있다. 

“커피는 더욱 다양해지고 더 많은 사람을 포용하고 있다. 커피는 세상을 더 좋게 만들 수 있다. 이 세상은 맛 좋은 커피로부터 에너지를 얻어 더 좋은 곳이 돼간다. 커피는 그 과정을 그려내는 작은 교향곡이다.”

커피는 다양성 속에서 발전하면서 우리와 늘 함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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