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주택 단지가 대형화하고 다양한 종류의 첨단 시설들이 도입되면서 관리업무의 영역과 양이 크게 늘었다. 많은 현장 관리자들이 공동주택관리업무가 과거에 비해 어렵고 복잡해졌다고 입을 모은다. 예전엔 입주자대표회의나 관리사무소장이 별다른 구애 없이 단지의 형편에 따라 공사와 용역업체를 선정했지만, 점차 둘 사이의 권한과 의무가 명확하게 구분되고 있다. 지금은 계약서 한 장 쓰는 데도 주체가 정해져 있다. 

그런데 현장에서 아직 이런 규정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거나 중요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경향이 남아 있는 듯하다. 대전 서구의 한 아파트는 관리주체가 계약당사자인 공사·용역계약 과정에서 관리주체인 관리사무소장을 배제하고 입주자대표회의가 업체를 선정해 감독관청으로부터 부적정 지적을 받았다.

도장 찍는 주체 달라진 것 많아

주택관리업자 및 사업자 선정지침 제13조에 따르면 적격심사제로 주택관리업자 및 사업자를 선정하는 경우, 관리주체가 계약자에 해당하면 관리주체와 관리주체가 선정한 평가위원 5인 이상을 구성하도록 돼 있다. 물론 예외조항도 있다. 하지만 해당 아파트는 단서조항에 해당하지 않았는데도 소장을 배제한 채 입대의 구성원에게 평가를 맡겨 구청의 지도감독을 받았다.

이는 관리사무소장의 업무를 입대의가 가로챈 셈이다. 입대의 입장에선 중요한 용역업체 선정을 소장에게 맡기는 게 못 미더울 수 있었겠지만, 입주민 대표들이 특정업체를 밀기 위해 무리수를 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을 살수도 있는 행위였다. 결정권자와 책임자가 나눠지면, 문제 발생 시 도장을 찍은 책임자만 덤터기를 쓸 수 있다. 그래서 책임과 권한을 동시에 부여하는 것이다.

내용은 다르지만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장기수선충당금을 사용하는 공사는 입주자대표회의가 계약을 체결해야 하는데, 관리사무소장이 계약을 체결하고 공사를 집행한 사례다. 예전엔 내용이 충실하면 형식은 무시해도 되는 관행이 통했으나, 지금은 내용이 아무리 훌륭해도 형식을 벗어나면 문제가 된다. 

베테랑도 ‘위반사례’ 숙지 필요

국토부 고시인 주택관리업자 및 사업자 선정지침 별표7에는 업체 선정방법이 명시돼 있다. 입주자대표회의가 계약주체인 경우는 4가지다. 위탁관리를 맡기기 위한 주택관리업자 선정계약, 하자보수보증금을 사용하는 공사계약, 장기수선충당금을 사용하는 공사계약, 전기안전관리 사업자 선정계약, 이렇게 4종의 계약서에는 반드시 입대의가 도장을 찍어야 한다.

나머지 계약은 관리주체의 업무다. 일반보수공사, 전기안전관리를 제외한 여러 용역계약, 각종 물품구입과 단지 내 광고계약 등에는 소장이 날인해야 한다. 간혹 소장에게 너무 많은 권한을 준다며 볼멘소리를 내는 입주민 대표들이 있다. 사실은 정반대다. 소장의 권한은 속 빈 강정일 뿐, 소장에게 과도한 책임을 지운다고 하소연한다. 도장을 찍는 순간 모든 책임을 떠안기 때문이다.

이렇게 계약 종류에 따라 책임소재의 경계와 구분이 명확해진 이유는 입주민의 재산권보호와 함께 관리투명성을 강화하기 위해서다. 대전 서구청이 과거부터 올 상반기까지 이어진 실태조사 결과를 분석해 주요 위반사례집을 발간 배포했다. 내용을 보면 쪼개기 계약 등 비리로 의심되는 것부터, 잘못된 날짜 계산 등 단순 착오와 실수까지 다양한 지적사례가 나온다. 주택관리 베테랑이 잘못을 저지르는 이유는 스스로 다 알고 있다고 과신하기 때문이다. 위 사례집은 단지 한 지역의 케이스가 아니다. 읽어보고 공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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