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경비원 열악한 근무환경 개선 언제?

고경희 기자
고경희 기자

화장실에서 밥을 지어 먹어본 사람이 몇이나 될까. 최근 김미영 아산시의회 의원이 공동주택과에 대한 감사 도중에 “남자 화장실에서 지은 밥”이라며 공깃밥을 내밀었다. 아파트 경비원들이 열악한 근무환경으로 인해 화장실에서 밥을 지어 먹는 현실을 고발한 것이다.

이런 현실을 드러낸 건 과거에도 있었다. 2019년 11월 ‘아파트 경비노동자 고용안정을 위한 조사연구 및 노사관계 지원사업 공동사업단’이라는 긴 이름의 단체가 보고서를 내놓았다. ‘전국 아파트 경비노동자 실태조사 보고서’였다. 여기에는 전국 경비노동자 3388명 중 40.2%가 별도 휴게공간이 없어 경비초소를 휴게실로 사용하고 있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사용사업주인 입주자대표회의의 허가가 없으면 실질적인 휴게공간을 마련하기 어려운 현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당시 한 경비원의 면접 조사 답변은 안타깝기만 했다. “야간 휴게시간에는 스티로폼과 냉장고 박스, TV장 같은 것을 이용해 취침하고 있다. 휴게공간이 있지만 잠을 잘 수 있는 여건이 아니고 귀찮아서 이용을 잘 안 한다.”

3년 전 자료라서 지금은 상황이 다를 수 있다. 휴게시설 설치율이 늘고 휴게시설을 이용하는 경비원이 많아졌을 수 있다. 하지만 아파트 현장을 취재하면서 살펴본 경비원의 근무환경은 썩 개선되지 않았다.

24시간 격일제로 근무하는 경비원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초소에서 보낸다. 화장실도 초소 안에 설치돼 있다. 경비원 화장실은 탕비실도 되고 옷장도 된다. 경비초소가 좁다 보니 화장실에 밥솥과 전자레인지를 두고 변기 옆에서 밥을 짓거나 데워 먹는다. 2년 전 입주민의 괴롭힘을 견디다 못해 세상을 등진 故 최희석 경비원이 근무했던 경비초소도 마찬가지였다.

화장실에 문이 달려 있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문 대신 커튼으로 업무공간과 화장실을 구분해 놓은 아파트도 있다. 24시간 내내 화장실 냄새를 맡으면서 일을 하고 잠을 자고 밥을 먹는다. 초소 환경이 열악해 힘들지 않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래도 어쩔 수 없죠”라며 멋쩍어하던 경비원의 모습이 기억난다.

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령이 지난달 시행돼 50명 이상을 고용하는 아파트는 경비원·청소원 휴게시설을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한다. 경비원의 휴게권 보장으로 신체적 피로와 정신적 스트레스를 줄이겠다는 취지다. 휴게시설은 설치·환경 기준에 따라 일정 면적 및 습도, 냉난방 기기, 음용 가능한 물 등을 갖춰 마련해야 한다.

휴게시설 설치 의무제도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존재한다. 지난달 만난 심유리 대전아파트경비노동자권리찾기사업단 단장은 “휴게시설을 별도로 잘 만들어놓아도 경비원은 택배, 주차 업무를 하다 보면 경비초소에서 쉴 수밖에 없다”고 현실을 말했다. 그는 “그러니 경비초소 환경개선이 먼저”라고 주장한다. 냉난방기 설치 지원 등 경비초소 환경개선 비용지원 근거를 지자체 조례에 담아야 한다는 게 그의 의견이다.

정부와 지자체에서 법령, 조례로 경비원 근무환경 개선 조항을 규정하는 일은 환영할만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씁쓸함이 남는다. 법으로 휴게시설의 환경조건까지 세세하게 규정하고 이를 지키지 못한 아파트에 과태료를 부과해야만 세상이 좋아질 수 있는가.

경비원 근무환경에 사회적 관심이 쏠린 것은 이미 오래전의 일이다. 2019년 5월 공동주택 건설 시 근로자 휴게시설을 설치하도록 주택건설기준 규정이 개정됐다. 지난해 8월 감시·단속적 근로자 승인요건으로 기준에 맞는 경비원 휴게시설 설치가 포함됐다. 

그 뒤 경비원 근무환경은 과연 좋아졌는가. 휴게시설이 있는 아파트의 한 경비원은 “법이 시키니 형식적으로 설치한 시설이어서 실제로 이용할 곳이 못 된다”고 말한다. 법이 정해놓으니 급하게 지하의 한쪽 귀퉁이 남는 공간에 휴게시설이라는 이름을 붙인 아파트도 많이 봤다. 어떤 아파트는 초소 내 간이 창고였던 것 같은 공간에 1인용 전기장판을 깔아놨다. 한 사람이 겨우 누울 면적이었다.

경비원 근무환경 개선 제도가 쏟아져도 결정권을 쥔 입주민의 공감대는 형성되지 않는다. 형식적으로 눈가림하는 시설만 만들어지는 이유다. 실질적 휴게라는 명목으로 휴게시설 면적, 습도, 소음 기준에다, 갖춰야 할 비품까지 하나하나 법으로 규정한다 한들 무엇이 얼마나 달라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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