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중심가에 자리한 ‘명물 커피숍’

일본 도쿄의 중심지인 긴자(銀座)는 백화점과 쇼핑 몰·전문 가게들이 즐비하다. 메이지(明治・1868-1912) 중기부터 형성된 긴자에서는 수십 년에서 수백 년을 이어온 시니세(老鋪:오래된 전통 가게)가 유행을 선도하는 패션몰들과 나란히 손님을 맞는다. 

귀금속점 와코(和光), 양복점 도야(田屋), 진주로 유명한 미키모토, 양갱의 대명사 도라(虎屋) 같은 점포들이다. 또 문구점 이토야(伊東屋), 안경점 마쓰시마(松島), 포목점 에치고야(越後屋) 같은 시니세가 대를 이어가고 있다.

카페 파울리스타 외관
카페 파울리스타 외관

 

긴자에서 또 하나의 명물 시니세를 찾는다면 창업 111년이 된 카페 파울리스타(Paulista)다.

… 가스등의 창백한 빛의 물결 한쪽 구석에서
몬나 바나(Monna Vanna)의 작자를 그리워했다.
브렝땅에서 나가이 카후(永井荷風)를 만났다.
야시장의 휴대용 석유등에 구보타 만타로(久保田萬太郞)의 옆얼굴이 힐끗 붉어졌다
한 잔에 5전의 브라질 커피 파울리스타!
이윽고, 라이온도 ‘카페 긴자가 된다’고 하는 소문이다.

일본의 불문학자인 히라노 이마오(平野威馬雄, 1900-1986)의 시 ‘긴자의 추억’이다. 시에 벨기에의 극작가 메리스 마테를링크(Maurice Maeterlinck, 1862~1949)의 1902년도 작품 몬나 바나, 소설가 나가이 카후(1879~1959), 구보타 만타로(1889~1963)와 함께 카페 파울리스타가 등장한다. 그만큼 문인들이나 예술가들이 자주 들락거렸던 카페였다. 희곡·오페라·소설 등에도 이 카페가 자주 등장했다. 1978년 비틀즈의 존 레논(John Lennon, 1940~1980) 부부가 연 삼 일을 찾아가 화제가 되기도 했다.

“커피의 향기에 숨이 막혔던 어젯밤보다
꿈에서 보았던 사람이 옆에 비치누나.”

일본의 유명 가인(歌人) 요시이 이사무(吉井 勇, 1886 ~1960)의 ‘酒의 詩歌句集’에 나오는 노랫말이다. 커피의 향기도 숨이 막히도록 좋지만 옆에 앉아 있는 사람과의 넉넉한 나눔이 더욱 좋다는 노래일 듯싶다. 

존 레논 부부, 3일 연속 찾아 화제 되기도
日 ‘이민 아버지’ 미즈노 류, 1911년 창업
농약-화학비료 안쓴 ‘모리의 커피’ 인기

우리나라도 최근 들어 커피 맛 선호가 분명해지는 추세다. 본디 커피숍이나 카페는 커피의 맛을 즐기는 것과 더불어 사람을 만나고, 대화 장소로서의 비중이 크다. 

카페 파울리스타의 입구에는 커피숍의 상징물인 커다란 마크 하나가 있다.

“별 가운데 들어있는 여왕의 모습!

별을 둘러싸고 있는 커피나무 이파리와 붉은 커피 체리!”

이 마크는 브라질 상파울로 시의 심벌 문장을 본떠서 만들었다. 세월의 흐름과 관계없이 이 마크는 그간 일본 커피계의 발전과 역사와 문화를 대변하고 있다. 세계 최대 커피 생산국인 브라질의 상파울로 주 정부가 메이지 중반기에 일본의 이민을 받아들인 이후 이곳 긴자에 커피숍이 탄생했던 것이다. 

당시 사장 미즈노 류(水野龍, 1859-1951) 씨가 카페를 열면서 이렇게 말했다.

미즈노 류
미즈노 류

“오늘 여러분에게 제공하는 커피는 일본에서 브라질로 이민가신 사람들의 노고가 가져온 수확물입니다. 그들의 땀의 결정으로 여러분께 맛있는 커피를 제공할 수 있게 됐습니다. 그들에게 감사합니다. 저는 감사의 마음으로 일본의 커피 문화를 지속적으로 발전시키겠습니다.” 

이처럼 한 사람의 집념과 열정으로 탄생한 카페가 111년이 되도록 한 자리를 지키면서 사람들에게 맛의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는 것이다. 

카페 파울리스타는 어떤 의미일까. 카페(Cafe)는 브라질어로 커피라는 의미고, 파울리스타는 상파울루 사람이라는 뜻이다. 이 카페와 브라질은 어떤 인연으로 시작됐을까.

브라질과 일본의 인연은 ‘이민의 아버지’로 불리는 미즈노 류 씨로부터 시작된다. 미즈노 씨는 1909년 4월 28일 이민선 가사토마루(笠戶丸)를 타고 브라질을 향했다. 그는 이민 단장을 맡았다. 

이 배에는 계약 이민 158가족 781명과 자유 이민 12명을 태우고 일본의 고베(神戶)항을 출발했다. 일본으로부터 브라질로 이민 간 최초의 사람들이다. 그들은 브라질에서 열심히 일했다. 

미즈노 씨는 그 공으로 연간 1000가마의 커피콩을 무상으로 받았다. 그뿐만이 아니다. 브라질 정부는 그에게 일본에서 커피 사업을 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 그 결과 1911년 상파울루 시 전속 카페 파울리스타가 탄생하게 됐다.

카페 파울리스타 로고가 새겨진  커피잔
카페 파울리스타 로고가 새겨진 커피잔

 

“1, 2층을 통틀어 100석의 좌석을 갖고 있는 카페입니다. 평일에는 300여 명 정도 오고, 주말에는 400~500여 명 정도 옵니다. 일본에서 현존하는 커피숍과 카페 중 가장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만큼, 그 전통을 지켜나가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메이지 1911년에 개업을 했으니까요.”

지난 8월 28일 필자와 전화로 통화한 카페 파울리스타 점장 야자와 히데카쓰(矢秀勝·49) 씨의 말이다. 그는 “브라질 커피콩을 메인으로 쓰고 있으나 요즘은 다양한 산지의 커피를 사용하고 있다”면서 “손님들의 연령층은 다양하다”고 소개했다.

카페 파울리스타에는 ‘모리(森)의 커피’가 특히 인기 만점이다. 이 커피는 농약이나 화학비료를 쓰지 않는 숲에서 자란 커피를 지칭한다. 

“농약·화학비료 미사용-숲에서 자란 주옥(珠玉)의 커피!”

이 카페가 내세우고 있는 슬로건이다.

카페 파울리스타는 다른 곳과는 달리 쉬는 날이 없다. 월요일에서 토요일까지는 오전 8시 30분에 문을 열어 밤 10시에 문을 닫고, 일요일·공휴일은 낮 12시부터 오후 7시 30분까지 영업을 한다. 이 카페는 요일별로 손님들이 붐비는 시간을 홈페이지에 공개해서 혼잡을 피한다.

“저도 이 카페를 자주 갑니다. 역사가 오래된 것도 특징적이지만 무엇보다도 조용해서 좋습니다. 커피값이 다른 카페보다 비싸지만요.”

필자의 일본 친구 이토 슌이치(伊藤俊一·69) 씨의 말이다. 그의 말에 필자도 공감한다. 요즘은 코로나19로 가지 못하지만 과거에는 자주 들렀다.

카페의 홈페이지에는 많은 댓글이 있다. 최근에 올라온 글을 옮겨본다.

“브라질의 커피를 일본에 최초로 들여온 카페입니다. 중후감과 역사가 깃든 유명한 곳입니다. 커피를 좋아하시는 분들은 필히 가보시기 바랍니다.”

“대형 체인의 카페와는 달리 한 잔의 커피에 깊은 맛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 강하게 느꼈습니다. 또한 케이크도 맛있었습니다. 예쁜 딸기가 놓인 케이크를 추천합니다.”

“역사 깊은 시니세 카페로서 분위기가 좋습니다. 언제나 1층을 이용했으나 2층은 또 다른 분위기였습니다. 날씨가 더워서 아이스커피와 자허토르테(Sachertorte)를 맛있게 먹었습니다.” 자허토르테는 스폰지 케이크에 살구잼을 넣고 초콜릿을 입혀서 만든 오스트리아 비엔나의 케이크를 말한다. 이 카페는 커피 외에도 다양한 디저트를 판매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지금 커피 열풍에 빠져있다. 자고 나면 생기는 것이 커피숍이나 카페다. 이들 중 100년은 아니더라도 10년이라도 살아남을 수 있는 커피숍이나 카페는 과연 몇이나 될까? 한국적 커피숍 시니세의 등장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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