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절벽 시대에 경제활동은 노년의 권리인데⋯

서울 강북구 모 아파트의 경비원 87명 전원이 일자리를 잃을 위기에 처했다. 이 아파트는 경비체계 개편안을 두고 지난달 주민투표를 진행했다. 3830세대 중 2808세대(73. 3%)가 투표했다. 입주자대표회의는 경비원을 현재의 87명에서 37명으로 감원하는 통합경비 방안이 1646표(58.7%), 현행 방식이 1162표(41.3%)로 나와 감원에 대한 지지가 더 높았다고 공고했다.

통합경비 방안은 2~3개 동을 2인 1조로 통합 관리하고 재활용 분리수거 및 동 주변 청소, 제설 등을 위해 관리원(미화원) 17명을 증원한다는 것이다. 입대의는 안내문을 통해 통합경비로 바꿀 경우 관리비를 현재보다 약 30% 절감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아파트 입대의는 통합경비에 대해 경비인력을 감축하는 대신 체계적 순찰과 관리원을 증원하는 방안이라고 설명했다. 본래 통합경비는 사람과 기계의 협업을 뜻한다. 사람을 줄여 CCTV를 증설하고 차량번호인식기기와 자동 차단기 설치 등 주차시스템을 자동화하며, 보안문 등 각종 출입통제기기를 들여놓는 것, 즉 전자경비를 도입하는 것이다.

사람과 기계, 각각 장단점 있어

최근에 지어진 아파트들은 처음부터 전자경비시스템을 도입해 경비인력을 최소화한 상태로 시작한다. 과거의 아파트들은 전적으로 인적경비에 의존해 왔다. 이런 아파트들이 통합경비시스템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경비원 대량해고의 가능성이 생겨 사회의 관심을 끈다.

기계는 지치거나 피로하지 않으므로 24시간 한결같은 감시가 가능하고 관제실-관리사무소-경비실-기계실-각 세대 등을 유기적으로 연결할 수 있다. 하지만 돌발적인 정전사태가 일어나면 먹통으로 변해 거의 무용지물이 된다. 해킹에 의한 사생활 노출과 범죄위험도 있다. 경비원은 입주민과 정서적으로 교감할 수 있으며, 불편사항을 나서서 해결하고, 사소한 부탁까지 들어줄 수 있다. 최근엔 제초작업이나 고지서 배부, 동의서 징구, 선관위나 일반 관리업무 보조 등 관행적으로 해오던 일들이 법에 의해 금지됐다.

통합경비든, 인력경비든 각각 장단점이 있다. 이 중 어떤 경비시스템으로 정할지는 전적으로 전체 입주민의 뜻에 달려 있다. 입주민이 어디에 더 관심을 두느냐에 따라 결론이 판이하게 갈린다.

노인 일자리 제공은 국가 의무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 사회 어디에도 없는 것이 아닐까. 여기저기 문을 두드려 봐도 제일 먼저 물어보는 것이 나이다.” 본보 1면 기사의 도입부다. 지난해 나온 아파트 경비원 최훈(67) 씨의 에세이 ‘나는 아파트 경비원입니다’의 한 대목이다.

경비직은 우리 사회를 온몸으로 일으켜 세운 베이비부머 세대의 마지막 보루다. 가난하고 못 배운 사람만 하는 일이 아니라 대기업이나 교사, 공무원, 사업가 출신도 꽤 많다. 그만큼 대한민국 노년에게 주어진 일자리가 적다는 뜻이기도 하다. 첨단과학기술의 발전을 늙은이의 육체노동으로 막을 도리는 없다. 

이런 점에서 경비원의 적은 욕설과 폭력을 행사하는 입주민, 갑질을 일삼는 주민대표, 냉정한 용역업체, 권위적인 관리사무소장이 아니라 과학기술일 수 있다. 이미 로봇이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거나 위협하고 있다. 아파트 경비도 그중 하나다. 인구절벽 시대에 경제활동은 노인의 권리고, 일자리 제공은 국가의 의무다. 정부와 학계, 입주민과 관리종사자 모두가 내 일이라는 책임감을 갖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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