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우리나라에서 일하다가 사고로 현장에서 죽은 사람은 노동자 10만 명당 4.3명이었다. 선진국(영국 0.3명, 일본 1.3명, 독일 1.5명)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다. OECD 평균(3.1명)을 훌쩍 넘고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은 실정이다.

우리나라는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를 넘는 데도 안전은 선진국의 30~40년 전 수준에 머물러 있다. 우리는 선진국보다 사망 위험이 10~20배 높은 환경에서 일한다. 올해 상반기 7500여 사업장에 대한 안전감독 결과 법 위반 현장이 절반에 이른다. 소득 수준은 선진국 대열에 진입했는데 안전을 무시하는 관행은 좀체 개선되지 않았다.

본지 칼럼(2022년 6월 20일자 제1270호)에서 새 정부 인수위원회의 산재예방 정책이 전 정부 정책의 미온적 답습 내지 보완에 머물러 정책의지가 소극적임을 지적했다. 그러면서 당시 수립 중이라는 ‘산재감축 로드맵’에 획기적이고 정교한 정책 구상이 담기기를 기대했다.

지난달 15일 고용노동부는 업무보고 중 중대산업재해 감축을 향후 5년간 추진할 3대 핵심 정책의 하나로 제시했다. 요약하면 중대재해 감축 정책 패러다임을 ‘자율·예방’ 중심으로 전환해 ①위험성평가를 기반으로 한 자율 예방체제 구축 ②노사 공동 위험요인 발굴·개선 ③맞춤형·스마트 기술 지원 확대 ④직업성 질병·암 예방체계 구축 등 내용의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을 10월에 수립해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실망스러운 내용이다. ‘자율’과 ‘예방’은 산재예방 정책의 전통적인 패러다임으로 ‘전환’이란 표현은 생뚱맞다. 위험성평가는 본래 종업원 참여가 중요하다. 결국 ①과 ②는 동어반복에 지나지 않는다. ④의 직업성 암과 질병 예방은 사고사망을 가리키는 중대재해 감축과 거리가 멀다. 

노동부는 논란이 많은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해 ‘현장의 불확실성’을 조속히 해소하겠다고 한다. 이를 위해 올해 말까지 시행령을 개정해 ‘모호한 내용’을 정비하고, 처벌규정 등 현장 애로 및 법리적 문제점 등에 대한 의견을 충분히 들어 개선방안을 마련해 나간다고 한다.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한 비판으로 여러 논점이 있는데, ‘현장의 불확실성’은 법규가 모호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경영계가 모호하다고 지적하는 것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법이 정한 의무 이행 책임자이자 처벌의 객체인 ‘경영책임자 등’의 범위다. 이것은 법(제2조)에 ‘사업을 대표하고 사업을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사람’ 또는 ‘이에 준해 안전보건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이라고 정해져 있다. 

실무적으로는 전자를 가리키는 것으로 운용되고 있다. 다른 하나는 의무의 내용에 관한 것으로 시행령(제4, 5조)에 13개 항목을 명시하고 있다. 처벌 규정 등 기타 법리적 문제점은 다른 법과 마찬가지로 법원의 판결을 통해 해결될 것이다.     

따라서 중대재해처벌법의 모호한 내용이라는 것은 객관적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다. 경영계가 법에 대해 토로하고 있는 불만 또는 비판의 한 표현일 뿐이다. 시행 1년도 안 돼 잉크도 채 마르지 않은 법에 ‘시행령 개정’이라는 덧칠을 하는 행위는 개악을 감추려는 꼼수라는 비난을 자초하는 행위로 삼가야 할 일이다. 

행정부는 법 집행이 본래의 임무다. 행정부는 적용과 집행, 즉 운용의 묘를 기하려는 노력을 집중해야 한다. 일정 기간, 적어도 올해 1년이라도 시행해봐야 한다. 

그래서 제조업·건설공사·서비스업 등 현장에서의 준수 정도와 수용 행태, 행정 및 사법 기관의 적용 및 집행 상황, 사망사고 감소에의 기여와 같은 법의 긍정적ㆍ부정적 효과를 포함한 편익과 비용 등을 관찰해야 한다. 이후 종합적 분석과 함께 법의 개폐나 집행보완 등 개선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정도이자 바람직한 방향일 것이다.

새 정부의 중대재해 감축 의지가 확고하지 못하다. 게다가 최근 경기부양을 뒷받침한다는 구실로 화학물질 유출 긴급차단설비 기준 면제와 같은 안전규제 완화 요구가 거세다. 정부는 법을 퇴보시키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미온적인 정책의지와 이에 따른 공무원과 기업의 눈치보기가 함께 나타난다. 

그런데도 정부는 “집권 5년 내에 OECD 수준의 안전 선진국으로 가겠다”고 한다. 즉, 사고사망자를 10만명 당 4.3명에서 3.1명으로 줄이겠다는 야심 찬 목표를 설정했다. 이런 속에서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까. 

광주 신축 아파트 붕괴사고(2022, 6명 사망), 구미 불산 유출 사고(2012, 5명 사망, 가축 3000두 이상 희생), 이천 물류공장 화재사고(2020, 38명 사망) 같은 대형 안전사고·환경사고·화재사고 발생 후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일은 없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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