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경보기 오작동과 화재에 대한 안이한 대응이 참극을 불렀다. 비극이 데자뷰처럼 또 일어났다. 

지난달 27일 부산 해운대의 한 고층아파트에서 불이 나 일가족 3명이 사망하고, 입주민 200여 명이 꼭두새벽에 대피하는 일이 벌어졌다. 불은 13층에서 났고 신고를 받은 소방대가 출동해 30여 분만에 진화했다. 대원들이 50대 부부와 20대 딸을 발견해 병원으로 옮겼지만, 모두 참변을 당하고 말았다.

관리사무소도 즉효 해결책 없어 문제

2005년에 입주한 이 아파트는 2700여 세대, 51층의 초고층 대규모 단지다. 이렇게 번듯한 아파트의 불이 난 집엔 스프링클러가 없었다. 건축 당시엔 16층 이상의 세대가 스프링클러 의무 설치 대상이었다. <관련기사 7월 20일자 2면>

안전보다 건축비용을 더 중시했던 당시의 사회 분위기가 문제일 수 있다. 그래도 최소한의 안전장치는 있었다. 바로 화재감지기와 경보기다. 

천장에 부착된 동그란 감지기가 열 또는 연기를 감지해 수신기에 신호를 보내면 요란한 경보음을 내는 비교적 단순한 시스템이다. 

불이 난 해운대 아파트에도 감지기가 달려 있었는데 화재에도 경보는 울리지 않았다. 그날 밤 당직을 선 관리직원이 오작동을 빚은 수신기를 꺼 버렸기 때문이다. 수신기를 끈 지 3분 후에 진짜 불이 일어났다. 그 3분이 일가족의 생명을 앗아간 것이다.

 조사과정에서 당직 근무자가 과오를 인정했으므로 사법처리를 면할 길이 없어 보인다. 주위를 둘러보면 잘못이 그에게만 있는 건 아니다. 화재경보시스템의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에 나온 관련 제품들은 많이 개선됐지만, 과거 제품들은 비전문가가 보기에도 조악하기 짝이 없었다. “이런 물건이 과연 제대로 기능할까?” 하는 의심이 들 정도였다. 

이들 제품은 오작동도 잦았다. 한밤에 요란한 사이렌과 경보음이 울리면 아무리 강심장이라도 놀랄 수밖에 없다. 입주민들은 잠이 덜 깬 상태에서 옷도 제대로 입지 못한 채 뛰쳐나가게 된다. 로비에서 막상 아무 일도 없었다는 걸 확인하면 안도감과 함께 짜증이 난다. 그렇게 다시 잠을 청하려다 또 경보음이 울리면 울화가 치밀고 관리사무소를 향해 폭발한다.

문제는 관리사무소도 즉효를 보이는 해결책이 없다는 데 있다. 화재 신호를 발신한 감지기를 찾아 원인 파악과 조치를 해야 하는데, 정확한 지점이 특정되지 않으면 여러 집에 들어가 일일이 확인해야 한다. 그럴 때 “우리 집엔 아무 일 없으니 점검할 필요가 없다”고 거절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빈집일 경우엔 들어갈 수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수신기를 재작동시키면 경보가 또 울어댄다.

안전투자 늘리고 제품 품질 개선해야

관리직원은 업무 경력이 조금만 돼도 이런 상황을 겪어봤을 정도로 흔하디흔한 일이다. 해운대 비극의 날, 당직 근무자로서는 3분 전 오작동과 수신기 차단이 천추의 한으로 남을 것이다. 수신기를 껐으면 순찰과 감시라도 철저히 해야 했는데, 2700세대를 혼자서 돌아보는 것 역시 불가능에 가깝다.

아파트도 비용 절감에만 골몰해서는 안 된다. 이런 대단지에 당직자가 1명에 불과한 건 지나치다. 혼자서는 비상사태에 대처하기 어렵다. 오작동은 날씨가 고약할 때 더 자주 일어난다.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부는 날, 너무 덥거나 추운 날에는 더욱 신경을 써야 하는 이유다. 관계 당국은 화재감지 시스템과 제품의 품질 규정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 공동주택은 안전 투자를 더 늘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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