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푸아뉴기니 커피농장을 가다

“식인종의 나라에서도 커피가 생산된다고?”

아직도 해소되지 않고 있는 파푸아뉴기니에 대한 일반적 인식이다. 하지만 실제로 이곳에 식인종은 없다. 파푸아뉴기니는 남태평양에 위치한 섬나라다. 커피의 역사는 짧지만 질 좋은 커피가 생산되면서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뉴기니섬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섬이다. 파푸아뉴기니의 면적은 주변 섬을 합치면 약 46만㎢에 달한다. 현재 인구는 930만 명이다.

해발 4509m의 빌헬름 산(Mount Wilhelm)은 파푸아뉴기니에서 가장 높다. 커피 재배는 해발 1500~2000m 지역에서 이뤄진다. 해발 고도가 높아 밤낮의 기온 차가 심하고 토양은 화산지대여서 미네랄이 풍부하다. 우기와 건기가 있으며 열대성 몬순의 영향으로 연간 강우량은 2000㎜전후다. 커피 재배에 매우 적합한 자연 환경이다.

현지에서 처음 씹어본 ‘커피체리’

필자는 2011년 파푸아뉴기니를 처음 방문했다. 커피 홍보 자료를 구하기 위해 일주일을 체류했다. 파푸아뉴기니 수도인 포트모르즈비(Port Moresby)에서 384㎞ 떨어진 고로카(Goroka)가 이 나라의 대표적인 커피 생산지다. 매년 5월 커피 축제가 열리는 이곳은 ‘커피의 성지’로 불리기도 한다.

파푸아뉴기니에서 커피는 1930년경에 자메이카의 선교사들에 의해 처음 심어졌다. 이제는 이 나라가 세계 20위권의 커피 생산국으로 우뚝 섰다. 자메이카의 품종이어서 세계 1위 ‘블루마운틴’이라는 상표도 붙일 수 있다.

파푸아뉴기니 커피의 특징은 품질이 뛰어난 아라비카(Arabica)종 유기농 커피며, 풍부한 아로마(aroma)와 과육, 고급스러운 신맛과 부드러운 단맛이 균형 잡혀 있다. 가볍지 않은 보디(body)감과 초콜릿향의 뛰어난 뒷맛(aftertaste)이 일품인 것도 자랑거리다.

일찍이 유기농 커피에 눈을 뜬 뉴질랜드와 미국·유럽에서도 파푸아뉴기니산 커피를 선호하고 있다. 미국의 하워드 슐츠(스타벅스의 전 회장)는 저서 ‘온워드(Onward)’에서 "스타벅스는 파푸아뉴기니의 아라비카종 원두를 초창기부터 사용했다"고 밝혔다.

‘드디어 커피 농장을 가보는구나.’

현지인 카이미 와린(Kaimi Warin)의 안내를 받았다. 그는 호주 유학파로 현지 커피 연구가다. 겨우 차 한 대가 지나다닐 수 있는 산 속의 길을 따라 점점 깊은 열대림 속으로 들어갔다.

여인네들이 커피 체리를 따고 있는 400ha(약 120만 평)의 마티아스(Mathias) 농장이 나타났다. 해발 1600m에서 자생하고 있는 아라비카종 커피나무에 주렁주렁 달린 빨간 열매들이 새까만 피부의 여인 손을 거쳐 바구니에 담아지고 있었다.

필자는 우선 빨간 체리 한 알을 입 안에 넣고 씹어봤다. 달콤한 맛이었다. 난생처음 커피 체리를 직접 따서 먹어 보는 감격적인 순간이었다. 체리 안에서 두 개의 콩이 나왔고, 끈적 끈적한 액체가 묻어났다.

“이 조그마한 열매는행복한 지혜의 원천이다.” 

유명한 커피 애호가로 혈액 순환과 심장의 기능을 처음으로 규명한 영국인 의사 윌리엄 하비(William Harvey·1578~1657)가 한 말이 떠올랐다. 이 빨간 열매가 석유 다음으로 세계 무역거래 규모 2위 품목이라는 사실에 새삼 놀랐다. 카이미 와린은 “이 열매가 바로 향기로운 아로마를 내뿜는 아라비카종 티피카의 커피 체리”라고 설명했다.

커피의 일생은 어떤가. 행복할까, 불행할까. 아니면 모파상(Maupassant)의 ‘여자의 일생’에서 말하듯 ‘그렇게 행복한 것도 불행한 것도 아닐까.’ 커피의 일생으로 들어가 본다.

 

4년째부터 열매 맺어 20~30년 수확

커피나무는 약 3년째에 꽃을 피운다. 하얀꽃에서 자스민 향이 난다. 4년째부터 수확이 가능하다. 관리를 잘하면 20~30년간 수확할 수 있다. 아라비카종의 이파리는 폭이 좁고 길고, 로부스타종은 둥글고 크다. 커피 열매는 녹색에서 붉은색으로 익어간다.

지구상에서 커피가 잘 자라는 지역을 ‘커피 벨트’라고 부른다. 적도를 중심으로 북위 25도와 남위 25도의 지역이다.

농장에서 여인들이 각자 하루에 따는 커피 열매의 양은 사람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50~100㎏에 달한다고 했다. 일당은 50㎏당 10키나(파푸아뉴기니 화폐). 우리 돈으로는 약 4300원이다.

40대 중반이라는 한 여인은 빨갛고 알이 굵은 체리를 따 보여주면서 “이 열매가 우리 가족 생계를 위한 유일한 수단입니다. 고마운 열매랍니다”라고 말했다.

파푸아뉴기니 원주민들이 세척 후 숙성시킨 파치먼트를 말리고 있다.
파푸아뉴기니 원주민들이 세척 후 숙성시킨 파치먼트를 말리고 있다.
말린 파치먼트를 탈곡하고 있다.
말린 파치먼트를 탈곡하고 있다.

여인들이 딴 커피 체리는 마대에 담아 공장으로 옮겨진 후 24시간 물탱크에서 불린다. 이 과정에서 벌레 먹은 체리나 물에 뜨는 체리를 골라낸다. 질 좋은 체리는 2, 3회 세척 후 물기가 빠지기를 하루 동안 기다려 펄핑(커피 체리의 껍질과 과육을 제거하는 공정)을 한다.

펄핑을 마친 파치먼트(parchment)는 한 번 더 세척해 자루에 담아 24시간 숙성시킨다. 이것을 다시 5~7일간 햇볕에 말린다. 파푸아뉴기니에서는 햇볕을 이용한 자연 건조 방식이 보편적이다.

다시 말하면 커피 체리→파치먼트→생두→원두의 과정을 거친다. 쌀과 비유하자면 벼의 낱알 상태가 파치먼트고, 도정한 쌀이 생두라고 할 수 있다. 생두를 볶으면 원두가 된다.

현지 농부들이 파치먼트 자루를 쌓아 놓고 판다.
현지 농부들이 파치먼트 자루를 쌓아 놓고 판다.

현지 농부들이 마대에 짊어지고 읍내장터로 팔러 나가는 것은 모두 파치먼트 형태다. 산골마을 어귀마다 파치먼트 자루가 세워져 있다. 지나가는 중간 상인에게 팔기 위해서다.

중간 상인들은 마을에서 구입한 파치먼트를 장터에서 성벽처럼 쌓아놓고 판다. 이 커피자루 하나에는 60~70㎏가 담겨있다.

이 커피자루는 어디로 흘러갈까?

장터에서 팔린 파치먼트 자루는 탈곡장(쌀을 도정하는 정미소와 유사한 시설)으로 옮겨진다. 껍질을 벗겨내기 위해서다. 이를 전문적 용어로는 헐링(hulling)이라고 한다.

체리 형태를 그대로 말리는 전통적인 건조 방법의 용어는 허스킹(husking)이다. ‘헐링’과 ‘허스킹’을 통틀어 ‘밀링(milling)’이라고 말한다.

밀링 과정에서도 돌이나 이물질을 찾아내는 사전 클리닝(cleaning)을 잘해야 한다. 이렇게 해서 수차례의 검증을 거친 파치먼트는 푸른색 생두(green bean)로 태어난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공정이 끝나는 게 아니다. 결점두(defect bean)를 찾아내는 작업이 진행된다. 이 작업을 기계로 하는 곳도 있지만, 인건비가 싼 아프리카·파푸아뉴기니 등 대부분의 나라에서 사람의 손에 의해 결점 두를 골라낸다. 이를 핸드 소팅(hand sorting)이라고 한다. 큰 공장에서는 많은 여인이 테이블 위에 생두를 펼쳐놓고 질서 정연하게 작업을 하기도 한다.

 

원주민들의 고난과 애환 담겨

한 가족이 둘러앉아 도란도란 대화하면서 결점두를 찾아내는 작업도 웃음꽃이 핀다. 어린아이도 훼방을 놓지 않고 함께 참여한다. 결점두를 고르면서도 사랑 넘치는 가족 간의 관계가 선진 사회보다 차라리 나아 보인다. 그들에게 바람이 있다면 커피 농사가 잘돼서 일거리가 많아지는 것이다.

해외로 팔려나가는 생두
해외로 팔려나가는 생두

이렇게 걸러진 생두는 60㎏들이 마대에 담겨 통풍이 잘되는 곳에 차곡차곡 쌓인다. 그리고 현지에서 그린 빈으로 탄생한 커피는 한국·미국·일본·유럽 등을 향해 기나긴 여행을 떠난다.

커피 전문가들은 “커피는 생리적 활동을 하는 살아있는 존재다”고 말한다. 그만큼 보관이 중요하다. 멀리 떠나는 커피의 맛과 향을 위해서 보관에 신경써야 한다.

“우리는 이 땅의 사나이들/ 우리는 밭에 나가 커피를 따네/ 이렇게 우리는 가족을 먹여 살린다네.”

커피 축제 때 남녀가 주고받는 커피 노래의 일부다. 가난한 파푸아뉴기니 사람에게는 ‘커피가 중요한 생명의 열매’라는 것을 읊고 있다.

무심코 후루룩 마셔버리는 커피 한 잔. 거기에는 가난한 원주민의 고난과 애환이 담겨있다.

필자의 파푸아뉴기니 커피 농장 탐방은 커피의 겉모습이 아닌 그 속에 담긴 사람들의 내면을 이해하는 배움의 길이었다. 커피가 중요한 생명의 열매라는 사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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