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장마의 한복판이다. 기상청에 따르면 올해 장마는 지난달 20일 제주부터 시작됐다. 기상청이 예측한 올해 장마기간은 중부지방 6월25일~7월26일, 남부지방 6월23일~7월24일, 제주지방 6월20일~7월20일이다. 공동주택 관리현장에서 장마철은 ‘농한기’로 통한다. 불요불급한 공사는 중단되고, 빗속에 관리사무소를 찾는 민원인도 줄어든다. 옥상과 창틀, 지하주차장의 누수만 없다면 동분서주할 일이 딱히 없다.

그렇다고 해서 할 일이 없는 건 결코 아니다. 빗물이 고인 곳에서 넘어짐 사고가 빈발하고, 미끄러운 지하주차장의 접촉사고 위험도 크다. 빗물제거를 수시로 해줘야 한다. 현관, 복도, 계단 역시 장마철 취약지구에 속한다. 

몇 해 전 지하의 고인 물에 발을 들였다가 감전사한 미화원이 있었다. 전기시설과 화재설비에 대한 안전점검은 더욱 강화해야 한다. 특히 법면이나 축대를 끼고 있는 단지는 붕괴위험을 주시해야 한다. 올해 장마는 집중호우와 강풍이 이어지고 있다. 태풍급의 대비태세를 갖추고 있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관창에 접지선에 살필 것 많아

광주시 소방안전본부는 지난달 옥내소화전 관창 도난주의보를 발령했다.<관련기사 1면> 관창은 소방호스에 연결해 물을 내뿜는 금속(주로 황동)재질의 장비다. 소방시설은 화재 시 누구나 신속하게 사용할 수 있어야 하므로, 소방호스와 관창은 소화전함에 상시 비치돼 있으며 잠금장치가 없다. 사실상 절도에 무방비인 셈이다. 소화전에 관창이 없으면 소방호스 역시 무용지물에 가깝다. 주사기에 주사바늘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2019년 5월 대구 모 아파트 관리사무소장이 단지를 순찰하며 건물 점검구를 살피던 중 접지선이 모든 층에서 잘려나간 것을 발견했다. 다른 동도 같은 상태였다. 소장은 즉시 경찰에 신고하고, 대한주택관리사협회 대구시회에 연락을 취하는 한편, 회원 게시판에 글을 올려 주의를 당부했다. 얼마 되지 않아 게시판에 댓글이 폭주하고 소장의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여러 단지에서 똑같은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접지선은 낙뢰 발생 시 전기통신 기기의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피뢰침으로부터 땅 속 깊이 묻어두는 전선이다. 낙뢰의 순간전압은 10억 볼트, 피뢰침과 접지선이 제 역할을 못하면 건물의 전기제품이 고장을 일으키고, 화재가 발생할 위험도 있다. 경찰이 전담수사반을 꾸리고 인근 아파트 소장들과 대책회의를 가졌다. 다른 아파트 소장이 용의자에 대한 단서를 잡았고, 또 다른 아파트 소장이 결정적 장면이 잡힌 CCTV 녹화본을 제공해 범인 검거에 성공했다.

 

불경기 우울증도 경계해야

불경기엔 좀도둑이 기승을 부린다. 이들은 대부분 평범한 사람이다. 대구의 접지선 도둑도 원래는 인터넷 설치기사였다가 실직 후 생활비 마련을 위해 범행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도둑은 수십만 원어치를 훔쳐가 고작 수만 원의 수입을 올린다. 그런데 그 절도현장에서 사고가 일어나면 피해액이 수억 원에 이를 수 있다. 

장마는 우울증을 유발하거나 악화시키기도 한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일조량이 부족해지면 수면과 진정작용을 유도하는 멜라토닌 분비가 증가한다. 낮에도 증가하면 우리 몸이 밤으로 인식해 정서적으로 불안하고 기분이 우울해진다. 대표증상은 원기가 없고, 쉽게 피로하며, 무기력하고 의욕이 사라지는 것 등이다.

장마는 사람을 우울하게 만들고, 불경기는 평범한 시민을 범죄자로 전락시킬 수 있다. 불경기의 장마철, 관리사무소가 더 경계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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