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어떻게 세계로 퍼졌나

강보에 싸인 커피 원두
강보에 싸인 커피 원두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커피에 매혹됐다. 나폴레옹은 왜 맛도 없고 색깔도 거무튀튀한 독특한 음료에 매료됐을까. 이유는 단순하다. 영양분이 거의 없는데도 왠지 힘이 나는 음료였기 때문이다”

일본의 무스이 류이치로(臼井隆一 郎 ·76) 도쿄대 명예교수의 저서 <세계사를 바꾼 커피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저자는 ‘커피와 권력이 서로를 갈망하고 이용하며 세계사의 물줄기를 바꿨다’고 봤다.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며 세계인의 기호품으로 일찍이 자리 잡은 커피. 그만의 역사에는 씨앗이나 묘목을 훔쳐서 자기 나라로 가져간 사람도 있었다. 불륜을 저지르며 커피 씨앗을 공공연하게 자기 나라로 가져간 사람도 있었다. 

인도 승려 바바 부단(Baba Budan)은 1600년 중동에서 커피 씨앗 7개를 허리춤에 숨겨서 마이소어 지역에 옮겨 심었다. 네덜란드는 1616년 모카에서 커피 묘목을 훔쳐 자국의 식민지 자바에 심었다. 커피나무에 대한 관심이 그만큼 컸다.

커피나무 가지 하나가 1800만 그루로

프랑스 해군 연대장 가브리엘 드 클리외(Gabriel de Clieu)도 예외가 아니다. 그는 루이 14세의 온실에서 자라던 커피나무의 가지 하나를 훔쳐 카리브 해의 마르티니크(Martinique)에 심었다. 파리의 궁중에서 자라던 커피나무 가지 하나가 대서양을 건너 카리브 해에서 꽃을 피운 것도 극적인 일이다. 이종화의 저서 <커피 마니아>에는 커피나무가 클리외에 의해 프랑스령 마르티니크로 가는 과정이 절절하게 담겨 있다. 

 

‘항해 도중 커피나무 가지를 보호하는 일이 훔치는 일보다도 더 힘들었다. 프랑스의 커피 산업을 방해하려는 네덜란드의 첩자가 이 가지를 없애버리려 시도했다는 기록도 있다. 해적선의 노략질과 태풍에 의해 거의 파산될 위기 가운데서도 그는 오로지 이 커피나무 가지를 보호하는 데 정성을 다했다. 식수가 부족해 물이 배급되는 상황에서도 그는 자신보다 커피나무 가지가 죽지 않도록 물을 주었다.’

클리외의 지극정성으로 커피나무는 1720년 마르티니크에 안착했다. 각고 끝에 대서양을 건넌 커피나무 가지는 50년 후 무려 1800만 그루로 늘어났다.

영국의 유명 시인이자 평론가인 찰스 램(1775~ 1834)의 시 <커피나무 가지>는 당시의 상황을 실감나게 묘사한다. 

 

향이 좋은 커피를 마실 때마다 
나는 자비로운 한 프랑스인, 고결한 인내심을 갖고
커피나무를 마르티니크 섬으로 가져온 사람을 떠올린다. 

(...)
그는 커피나무에서 어린 가지 두 개를 꺾어 바다를 건너온다.
배로 여행하는 동안 그는 그 어리고 여린 나뭇가지에 날마다 물을 줬다.  (...)
그는 커피나무 가지를 생각하며 조금이라도 물을 아꼈다.
소중한 어린 가지에 물을 먼저 준 다음
자신의 깊은 갈증을 달랬다.
그렇지 않고서 그의 입으로 먼저 가져간다면
바싹 마른 입술이 욕심을 부릴 것이 뻔했다.

이 정도면 시가 아니라 드라마다. 항해 중 물이 모자랐지만 자신의 갈증을 달래기에 앞서 커피나무에 물을 준 클리외였다. 그의 인내와 보살핌이 없었다면 마르티니크에서 커피나무가 자라지 못했을 터. 시인은 클리외에게 ‘영웅적인 보호자’라고 했다. 영웅을 칭송하는 섬 주민들의 박수 소리가 지금도 우렁차게 들리는 듯하다. 

브라질 커피 농장
브라질 커피 농장

세계 1위 커피 생산국 브라질은 어떤가. 브라질에서도 흥미진진한 일이 벌어졌다. 브라질이 ‘커피 강국’이 된 데는 프란치스코 드 멜로 팔헤타(Francisco de Melo Palheta· 1670~1750)의 눈부신(?) 활약이 있었다. 

독일의 시인이자 극작가이며, 소설가인 하인리히 에두아르트 자콥(1889~1967)의 저서 <커피의 역사>의 한 대목을 읽어보자. 

 

남아메리카에서 커피를 재배한 네덜란드인들의 플랜테이션은 네덜란드령 기아나에 있었으며 그 동쪽에 프랑스령 기아나가 있었다. 상대에 대해 질시가 심했던 두 나라 총독은 커피 열매 반출을 금했으나 문제의 ‘대단한 관목’이 네덜란드와 프랑스 두 국기 아래의 기아나에서 재배되고 있었으므로 그것은 어리석은 금지령이었다.

‘대단한 관목’은 커피나무를 가리킨다. 네덜란드와 프랑스는 기아나에서 국경 분쟁을 벌였다. 두 나라는 고심 끝에 포르투갈을 통해 브라질에 중재를 부탁했다. 

‘하늘이 준 기회로다.’ 

브라질은 중재 요청을 흔쾌히 수락하면서 무릎을 쳤다. 속셈은 따로 있었다. 커피 씨앗이나 묘목을 구하려고 백방으로 뛰고 있던 브라질은 기아나에서 네덜란드와 프랑스가 커피나무를 키운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브라질, 국가차원서 ‘불륜 공작’ 기획

브라질은 국가적 차원에서 불륜을 기획했다. 커피 씨앗이나 묘목을 구하려면 ‘프랑스 총독 부인을 유혹하는 것이 최선의 방안’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적임자를 수소문한 끝에 ‘상남자’ 육군소령 팔헤타가 추천됐다. 외모도 출중하고 팔방미인 소리를 듣는 그에게 겉으로는 국경 분쟁 중재자 역할이 맡겨졌다. 1727년의 일이다. 

브라질 커피 열매
브라질 커피 열매

 

팔헤타는 국가의 전폭적 지원을 받으며 ‘불륜 공작’에 투입돼 카이엔(Cayenne)에 파견됐다. 브라질 최북단에서 더 북쪽에 있는 프랑스령 기아나의 수도다. 네덜란드와 프랑스의 분쟁을 조정하는 것은 명목상 임무였다. 총독 부인인 마담 도르빌리에(Madame D’Orvilliers)에게 접근하는 것이 실제 그의 임무였다. 

팔헤타는 먼저 총독 부인의 시녀를 통해 자신을 어필했다. 멋진 외모와 세련된 매너 덕분에 추파는 곧장 총독 부인에게 전달됐다. 두 사람은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마음껏 사랑하는 것은 마음껏 사는 것이다. 영원히 사랑하는 것은 영원히 사는 것이다. 영원한 삶은 사랑과 결합된다.” 

브라질 소설가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 ‘불륜’의 한 대목처럼 총독 부인과 팔헤타의 사랑은 영원을 향해 질주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팔헤타의 머릿속에는 오로지 ‘커피 씨앗을 브라질로 가져가겠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팔헤타는 총독 부인을 만나 사랑을 나눌 때마다 커피를 화제로 이야기꽃을 피웠다. 

“부인! 커피 향이 우리들의 사랑만큼이나 진하고 황홀합니다.”

총독 부인의 머릿속에도 자연스럽게 커피가 각인됐다. 사랑이 ‘커피 체리’만큼 무르익은 어느 날, 팔헤타는 “본국에서 호출 명령이 떨어져 귀국해야 할 것 같다”는 말을 흘려 여인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드디어 팔헤타가 기아나를 떠나는 날이 됐다. 총독 부인은 팔헤타에게 남편이 보는 앞에서 커다란 꽃다발을 건넸다. 

“그동안 고생 많았습니다. 노고에 대한 선물입니다.” 

“감사합니다. 부인! 이렇게 아름다운 꽃다발을 주시다니요.” 

주변 사람들의 박수와 함께 꽃다발을 받은 팔헤타는 감격했다. 찬사와 꽃다발 덕분이 아니었다.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꽃다발 속에 한 줌의 커피 씨앗이 숨겨져 있었다. 브라질을 커피 왕국으로 일궈낸 첫걸음은 이렇게 시작됐다. 

사랑하는 남자를 위해 법을 어기면서 커피 씨앗을 꽃다발에 숨겨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건넨 여인의 애련한 일탈이 참으로 눈물겹다. 그럼 팔헤타는 연인을 기망한 배반자일까? 나라를 위해 일한 영웅일까? 브라질 사람들은 ‘커피 왕국이 된 것은 한 남자의 용감하고 로맨틱한 행동 덕분’이라고 어깨를 으쓱하지만, 속아 넘어간 여인의 처지에서 보면 슬픈 일일 듯 싶다. 

여인의 마음을 훔쳐 목적을 이룬 팔헤타는 기아나와 인접한 파라(Para) 지역에 커피 씨앗을 심었다. 파라 지역은 파라강 유역의 브라질 땅이다. 그곳은 열대우림으로 커피나무가 자라기 적합한 지역이자 팔헤타의 고향이라는 설도 전해진다. 

이렇듯 극적으로 파라에서 꽃을 피운 브라질 커피는 50년 세월이 지나서야 상파울루 고원까지 남하했다. 브라질이 워낙 땅이 넓은 탓이기도 하지만, 당시 사탕수수를 대량으로 재배하고 있었기에 커피 농사를 서두르지 않았다. 

브라질은 커피나무를 대량으로 재배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노동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결국 아프리카에서 노예를 수입해 커피나무를 키웠다. ‘브라질 남동부에서만 커피 재배를 위해 노예 150만 명이 유입됐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1850년 브라질에서 노예제도가 폐지되자 커피 농장주들은 유럽에서 건너온 이민자로 노동력을 대체했다. 브라질은 1850년 자바(현재 인도네시아 영토)를 제치고 세계 커피 생산량의 절반을 차지하는 국가가 됐다. 브라질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세계 최대 커피 생산국이자 수출국 지위를 지켜오고 있다. 커피와 권력이 서로를 갈망하고 이용하며 세계사의 물줄기를 바꾼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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