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아파트 관리의 세계③ 관리사무소의 하루(상)
싱크대-변기 보수도 관리직원 몫, 전유부분까지 관리

 

임대아파트는 공용부분뿐만 아니라 전유부분까지 관리해 분양아파트보다 민원이 많이 발생한다.
임대아파트는 공용부분뿐만 아니라 전유부분까지 관리해 분양아파트보다 민원이 많이 발생한다.

 

임대아파트 관리는 분양아파트 관리와 다른 점이 많다는 게 임대아파트 관리종사자들의 한목소리다. 임대아파트의 관리가 훨씬 까다롭다는 말도 나온다. 본보 기자가 12일 인천 남동구 등대마을 논현주공14단지를 찾아 임대아파트 관리사무소의 하루를 함께 겪으며 임대아파트 관리의 특징을 알아봤다.

 논현주공14단지는 총 1800세대 규모의 16년 차 국민임대주택이다. 65세 이상의 노인가구가 797세대로 44%를 차지해 비율이 가장 높다. 홀몸어르신(238세대), 새터민(187세대), 한부모가정(91세대), 사할린 귀국인(53세대) 등 취약계층이 다수 거주하고 있다. 

기자가 방문한 오전 9시, 관리사무소 직원들은 한창 회의 중이었다. 관리사무소장, 관리대리, 경리주임, 기전과장·주임·기사 등 총 12명의 직원 중 교대 인원 3명을 제외한 9명이 참석했다. 회의는 전날 저녁 6시 이후 접수된 민원들과 오늘 하루 진행해야 하는 업무 내용을 공유하는 시간이다. 

9시 40분경, 새로운 민원이 접수됐다. 세대 내부의 화장실 세면대가 흔들리니 와서 봐달라는 내용이다. 김용준 기전과장(53)은 “임대아파트와 분양아파트 관리의 가장 큰 차이점은 공용부분뿐 아니라 전유부분, 즉 세대 내부의 시설물 보수까지 관리사무소에서 처리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분양아파트에서는 전유부분에 문제가 발생할 경우 소유주가 직접 보수한다. 하지만 LH임대아파트는 세대 내 시설물의 소유주가 LH이기 때문에 관리사무소에서 보수해야 한다. 공용부분 관리만 신경 쓰면 되는 분양아파트에 비해 자연히 업무량도 많아질 수밖에 없다. 

김종선 기전반장(47)과 함께 즉시 해당 세대를 방문했다. 이 아파트에 10년째 거주 중이라는 입주민 A씨는 “임대아파트라 불편한 점은 전혀 없고 관리직원들이 모두 친절하다”고 칭찬했다. 

보수 작업이 꽤 오래 걸리겠다고 생각하던 중 세면대 상태를 살펴보던 김 반장이 사진을 찍고 금세 나왔다. 그는 A씨에게 “세면대는 오늘 당장 보수가 어렵다”며 “LH에 접수할 테니 며칠만 기다려 달라”고 말했다. 김 반장은 “관리사무소에서 직접 할 수 없는 고난도의 작업이나 시간이 걸리는 작업은 LH에 접수해서 처리한다”고 설명했다. 

LH임대아파트에서 발생한 모든 민원은 LH건설기술정보시스템 ‘코티스(Cotis)’에 입력해야 한다. 관리사무소가 처리하지 못하는 어려운 작업은 LH에 공문으로 전달한다. LH가 지정한 보수업체가 공사를 완료한 뒤 코티스에 사진과 내용을 입력하면, 관리사무소에서 이상이 없는 것을 확인한 후 다시 LH에 전송하는 시스템이다. 

이 아파트에서 13년째 근무 중인 권석훈 기전주임(51)은 “LH는 코티스를 통해 하자보수를 철저히 관리하고 있다”며 “단지 및 해당 세대의 민원 내역을 언제든 다시 확인할 수 있어 편리한 시스템”이라고 말했다. 

“이젠 어르신들이 부모님 같아요”

오후 1시 17분, 이번에는 싱크대에 물이 안 빠진다는 민원이 접수됐다. 최근 들어 치매가 심해진 아버지의 집을 방문한 딸 B씨의 전화였다. B씨는 “혼자 사는 아버지에게 반찬을 해드리려고 왔는데 싱크대가 막혀 관리사무소에 전화했다”고 말했다. 

지종훈 기전기사(63)는 능숙한 솜씨로 싱크대에 고인 물을 퍼낸 뒤 배수관을 교체했다. 다행히 이번에는 그 자리에서 직접 해결해 B씨 가족이 바로 싱크대를 사용할 수 있었다. 25분여의 작업을 마친 뒤 나서려는데 B씨가 비용은 얼마를 지불해야 하는지 물었다. 세대 내 시설물 보수 시 개별적으로 비용이 발생하는 분양아파트의 경우를 생각한 모양이다. 

지 기사가 “돈은 전혀 받지 않는다”고 말하자 B씨는 연신 감사하다며 “아버지가 가장 좋아하시는 아이스크림”이라며 두 개를 손에 쥐어줬다. 지 기사는 “단지의 3분의 2가 어르신이다 보니 TV가 안 나온다는 등의 사소한 민원까지 봐 드리고 있다”며 “그래도 어르신들이 정이 많아 이렇게 먹을 것을 자주 챙겨 준다”고 말했다. 

이 외에도 세면대 하부의 누수, 욕실 바닥 타일 들뜸, 콘센트 교체, 변기 레버 고장 등 쉴 새 없이 세대 내 민원이 접수됐다. 연달아 세 군데 민원을 처리하고 돌아온 나영채 기전기사(28)는 “민원이 많을 때는 하루에 20건 이상 발생하기도 한다”며 “단지가 크다 보니 아침부터 저녁까지 민원 처리만 할 때도 있다”고 말했다. 

세대 내 민원이 많다고 해서 공용부분 관리를 소홀히 할 수는 없다. 각 동 현관 입구의 낙하 안전망 청소와 단지 앞 보도블록 보수 작업에는 관리사무소 직원이 총동원됐다. 공용부분과 전유부분을 오가며 관리하는 덕에 그야말로 24시간이 모자랄 지경이다. 

“분양아파트에 비하면 몸은 힘들지만, 좀이 쑤시는 것보다 오히려 좋아요.” 정년퇴직 후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이 아파트에 정착한 지 기사가 “이제는 어르신들이 부모님처럼 느껴진다”며 환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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