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대의 의결로 가능하게 해야 시설물 유지·보수 제때 가능

대한주택관리사협회는 현 장기수선계획 제도에서 나타나는 문제 중 3년의 정기 조정 주기를 매년 조정하도록 하고 장충금의 최소적립 금액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대한주택관리사협회는 현 장기수선계획 제도에서 나타나는 문제 중 3년의 정기 조정 주기를 매년 조정하도록 하고 장충금의 최소적립 금액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아파트 관리에서 장기수선계획이 아주 큰 골칫거리입니다. 근무할 단지를 선택할 수 있다면 장기수선 일정을 체크해보고 피할 곳은 피하고 싶습니다.”

아파트 관리사무소장에게서 흔히 듣는 말이다. 장기수선계획은 법적으로 복잡하고 애매해 규정에 맞게 수립하지 않으면 과태료를 물을 수도 있어 관리주체인 아파트 소장이 가장 어려워하는 업무 중 하나다.

실제로 소장이 이를 잘못 집행해 과태료나 자격정지 처분을 받았다는 소식이 자주 들린다. 이 때문에 장기수선계획과 관련된 내용은 대한주택관리사협회, 국토교통부 및 지자체 질의에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공동주택을 오랫동안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필요한 주요 시설의 교체 및 보수 등을 위해 정부는 1983년 공동주택관리령을 개정해 최초로 장기수선계획 수립을 의무화했고 수해에 걸쳐 개정했다. 현행 공동주택관리법상 공동주택의 사업주체는 건설비용을 고려한 장기수선계획을 수립해 사용검사권자에 제출하고 사용검사권자는 이를 관리주체에 인계한다. 장기수선계획을 수립해야 하는 공동주택은 300세대 이상이거나 승강기나 중앙 또는 지역 난방방식이 있는 공동주택 등이다. 2월 기준 전국 1만7600여 단지다.

공동주택의 효율적인 관리와 입주민의 쾌적한 주거환경을 유지한다는 목적으로 도입된 제도에 대해 관리현장에서는 불만의 목소리가 크다.

수립된 장기수선계획의 내용이 현실에 맞지 않아 조정하려고 해도 법적으로 조정 절차가 까다롭다는 점이 가장 큰 불만이다. 이런 문제 때문에 시설물 유지·보수가 제때 이뤄지지 못하고 결국 시설물의 기능 저하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또 장기수선계획에 들어있다는 이유만으로 멀쩡한 시설을 노후화 여부와 관계없이 갈아치워야 하는 문제도 있다. 그로 인한 손해는 고스란히 장기수선충당금을 납부하는 입주자에게 돌아가는 셈이다. 

부산 사상구 소재 모 아파트 A소장은 낡은 외벽 도장의 공사를 위해 장기수선계획서를 들여다봤지만 수선주기가 도래하지 않아 공사를 미룰 수밖에 없었다. 그는 “계획을 수시조정하려면 전체 입주자 과반수의 서면 동의를 받아야 하는데 시간이나 직원 동원 여건 등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다”며 “예측하지 못한 공사를 진행해야 할 때는 입대의 의결로도 조정이 가능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주관은 “현행 제도는 비현실적인 부분이 많으므로 손질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대주관은 아울러 “3년마다 조정하는 정기검토를 매년 검토 및 조정할 수 있게 하고 장기수선계획상 공사의 타당성을 판단해 시행하지 않을 공사를 다음해로 넘기는 경우에는 매년 1회 입주자대표회의 의결로 조정이 가능하도록 개선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한번 정하면 조정하기 어려운 장기수선계획에 대해 공동주택 사업주체인 시행사가 계획 수립단계에서부터 전문가를 통해 현실적인 내용을 반영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50~60대가 대부분인 소장이 교육을 받더라도 시설물의 적정 시기 교체 여부나 비용 산출 등 장기수선계획에 적용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 

오주식 대주관 전 경남도회장은 “공동주택 시설물 보수 시기를 제대로 정했는지를 점검해보고 빈번한 공사 남발로 장충금을 소진하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 건축사, 기술사 등 분야별 외부전문가에게 의뢰하고 이를 근거로 조정할 수 있는 법적 근거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해 박상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말 공동주택관리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사업주체가 수립해 사용검사권자에 제출하는 장기수선계획을 사전에 공동주택관리 전문기관이 적정 여부를 확인하도록 해 처음부터 제대로 된 계획이 만들어질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승강기나 급수시설 등 공용부분 시설물을 교체하려면 많은 돈이 들어간다. 미래에 필요한 시설물 유지관리, 보수 및 교체 비용 마련의 일환으로 단지마다 장충금을 적립하고 입주민들은 관리비와 함께 납부한다.

그런데 공동주택관리법 시행령에 장충금의 1㎡당 최소적립 기준에 관한 지침은 없다. 시행령은 ‘장충금의 적립금액은 장기수선계획으로 정하고 국토부 장관이 주요시설의 계획적인 교체 및 보수를 위해 최소 적립금액의 기준을 정한다’고 돼 있을 뿐이다. 

서울 강남구 모 아파트 B소장은 “단지 시설물 교체 및 보수 공사를 위해 장기수선계획 정기검토를 거쳐 장충금 월 부과액을 전보다 1.5배 상향 조정했더니 입주민의 의심과 불만이 컸던 일이 있었다”고 전했다. 대주관은 “매번 조정이 필요한 공사예정금은 장기수선계획서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K-apt에 따르면 지난해 평균 장충금 월 부과액은 1㎡당 203원, 가구당 평균 전용면적을 76㎡(약 23평)로 봤을 때 1만5000원으로 나타났다. 현실적으로 공사가 제대로 되려면 이 금액의 3~5배가 적립돼야 한다는 것이 현장의 주장이다.

대주관 정책국은 “현재 단지별 장충금 적립액은 실제 공사에 필요한 금액에 현저히 못 미치는 수준”이라며 “정부가 장충금 최소 적립기준을 명확히 제시하면 돈이 모자라 공사를 하지 못하는 상황을 방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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