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사무소장 한 명이 사무실을 찾아왔다. 아파트 주민행사를 개최한다며 내가 근무하는 아파트의 입주자대표회장에게  줄 초청장을 가져왔는데 무척 세련되게 잘 만들었다. 그런데 얘기를 하다 보니 예전에 내게 주택관리사 배치 교육을 받은 적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가 그때는 파워포인트를 몰랐는데 내 얘기를 듣고 익히기 시작해 이젠 실무에도 활용하고 있다고 해 더욱 반가웠다. 
또 한 번은 평소 안면이 있는 소장이 만든 업무자료를 봤다. 물론 다른 부분을 만드는 데 훨씬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였겠지만 내 눈에 띈 것은 회의 자료로 준비한 슬라이드였다. 예전에 그 소장이 만든 회의 자료와 보고서를 본 적이 있었는데 그때보다 한결 자유롭고 자신감 있게 프로그램을 사용하고 있다는 느낌이었으며 디자인도 그 수준이 한층 높아졌다. 내가 직접적으로 사용법을 가르쳐 주거나 도움을 주진 않았으나 간접적으로나마 긍정적 영향을 미친 것 같아 무척 기분이 좋았다. 
주택관리사 배치교육이나 직무교육에서 강의할 때는 입대의 회의 시 프레젠테이션으로 진행하는 방법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프로젝터나 스크린이 설치되지 않은 소규모 아파트에서 별도 장비 없이 프레젠테이션 방식으로 진행하는 방법이라든지, 슬라이드를 만들고 설명하는 요령 등에 대해 언급을 하는데 좀 더 자세하게 알려주고 싶지만 제한된 교육과정이라 긴 시간을 할애할 수 없어 최소한의 범위에서 소개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 전반적으로 주택관리사(보) 교육 커리큘럼이 소장이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업무에만 치우쳐 있고 그 외의 업무 능력 향상을 위한 부분에 대해서는 다소 미흡한 것 같아 아쉽다. 
서류에만 의존해 지루하게 진행하던 회의에서 벗어나 프레젠테이션으로 편하고 효율적으로  회의를 진행하고 나면 입대의 구성원이 소장을 바라보는 시선이 많이 달라진다. 관리사무소장이 업무 능력을 업그레이드하는 방법은 다양하겠지만 회의를 프레젠테이션으로 진행하는 것만큼 확실한 효과를 보는 것도 많지 않다. 더 많은 단지에서 회의를 프레젠테이션으로 진행하고 소장이 업무 능력을 인정받는 데 일조  했으면 좋겠다는 것이 내가 아까운 교육시간을 할애해서 언급하는 이유기도 하다. 
자격증을 따고 배치 전 교육을 받으러 갔을 때 비슷한 처지에 있던 예비소장을 통해 소장 카페에서 취업뿐만 아니라 업무에 필요한 많은 자료와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업무를 위한 자료나 정보 따위는 관심도 없었지만 취업에 도움이 된다는 말에 솔깃해 가입했으나 공허하고 뜬구름 잡는 듯한 얘기들뿐 막상 피부에 와닿는 자료는 발견하지 못했고 하다못해 제대로 만든 관리계획서 하나도 구경할 수 없었다. 무척이나 건방지고 역설적인 얘기지만 그 상황을 보면서 오히려 무인맥 무경력이라도 내가 노력하면 취업을 할 수도 있겠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됐다. 
특별한 것도 없이 비슷비슷한 무기로는 경력자와 비교해 당연히 열세겠지만 차별화된 것을 준비한다면 뛰어넘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치기 어린 자신감이 가슴 밑바닥에서 꾸물거리며 올라왔다. 하지만 자신감은 자신감일 뿐 막상 준비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던 차에 어느 순간 아이디어가 하나 떠올랐다. 평면적인 이력서를 입체적으로 보이도록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연필로 그림을 그려가며 내 생각을 혹시 컴퓨터로 구현할 방법이 없을까 싶어 딸에게 물어보자 딸은 “파워포인트로 만들면 된다”는 얘기를 했고 내가 처음으로 파워포인트를 접한 순간이다. 
그날 밤부터 메뉴 단추를 하나씩 눌러가며 익히기 시작한 파워포인트로, 조잡하긴 했으나 당시 만든 그래픽 이력서와 관리계획서가 결국 내가 관리사무소장의 길로 입문할 수 있도록 도와줬다. 지금도 파워포인트는 입대의를 비롯해 각종 회의 진행뿐 아니라 안내문을 만들거나 보고서 등을 만들 때도 매우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다. 
소장이 업무 능력 향상을 위해 꼭 한 가지를 더 배우고 싶다고 하면 나는 조금도 망설임 없이 첫 번째로 파워포인트를 익혀보라고 권하곤 한다. 다른 사람에겐 그냥 하나의 프로그램에 지나지 않겠지만 내게 있어 파워포인트는 생각을 현실화해주고 더러는 새로운 방향과 해법을 제시해주곤 한다. 이 멋진 프로그램을 만들어 준 사람에게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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